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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경주집

[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경주집

  • 기자명 이형린 동화작가
  • 입력 2022.06.18 00:00
  • 수정 2022.10.2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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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 동화작가
이형린 동화작가

[뉴스더원=이형린 동화작가] 누구니 #1

집 앞 슈퍼에 맡겨놓은 택배를 찾으러 갔다. 슈퍼 사장님이 가게 앞 골목에 서 있었다. 마침 담배에 불이 붙이는 중이었다. 딱 그 타이밍에 내가 슈퍼에 들어가는 게 미안하다. 선선한 여름 밤 공기를 쐬며 담배한대 피우려는 그 찰나 말이다.

슈퍼 사장님은 백발 머리다. 이제 한 오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싶은데 이전부터 백발 머리셨다. 그 백발 머리도, 선해 보이는 인상도 참 좋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사장님이 담배를 끄며 묻는다.

"이 새 무슨 샌지 아나?"

그 말을 듣고야 슈퍼 앞 평상 위에 새가 있는 걸 봤다.

"앗! 깜짝이야!"

내 소리에 사장님까지 덩달아 놀랐다. 우선 택배를 찾고 미안한 맘에 과자랑 주스를 산 후 다시 평상 앞으로 왔다. 사장님도 따라 나온다.

"웬 새에요? 다친 거예요? 못 날아요?"

"차에 치었는지 크게 이상 있어 보이지 않는데 못나네."

평상 위 상자에 새가 앉아있다. 상자 안에는 종이컵을 낮게 잘라 만든 물그릇과 쌀이 있다. 귀여워 빠진 사장님이다.

"날지도 못하면서 자꾸 어딜 가서. 차에 칠까봐 상자에 넣어놨어. 무슨 샌지를 모르겠네."

자세히 본다고 내가 알 턱이 없지만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가지마! 공격해!"

사장님이 다급하게 말린다. 난 푸하하하 골목이 떠나가게 웃었다. 공격이라니.

"아까 어디 다쳤나 보려고 가까이 갔더니 공격하더라고."

난 여전히 큭큭거리며 새에게 말했다.

"야. 너 사장님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는데 왜 공격하고 그래."

사장님도 허허허 웃는다.

"그냥 풀어두면 진짜 차에 치겠어요. 못 나는데. 이따 슈퍼 문 닫으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가게 안에 들여다 놓으려고. 꼬리를 좀 다친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못나나?"

그러고 보니 꼬리 깃털이 몇 개 빠져있다.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은데 왜 못날까요? 진짜 차에 쳤나?"

"쌀도 안 먹고, 물도 안 먹어. 놀란 거 아닐까. 그래서 안나나."

난 아까만큼 크게 웃었다. 상자안의 쌀알도, 공격하니까 가까이 가지 말란 말도, 놀라서 안날거란 추측도 다 너무 예쁘게만 들린다.

"병원 가면 고쳐줄까?"

낼 병원에 가든 새 구조하는 데에 전화를 해보던 해야겠다고 한다. 난 원래 다정한 울 집 앞 슈퍼 사장님을 좋아한다. 근데 오늘부로 더 좋아졌다. 오늘 이름 모를 새는 사장님의 슈퍼에서 밤을 보낼 거다. 내일은 날 수 있길.

근데 진짜 무슨 새지. 

누구니 #2 

집으로 오는 길에 슈퍼에 들렀다. 딱히 사야할게 있는 게 아니라 음료수 두개를 골랐다. 새가 어찌되었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돈을 내며 슈퍼 사장님에게 물었다.

"어제 그 새는 어떻게 됐어요?"

사실 들어갈 때부터 평상에 새가 없는 걸 봤다.

"갔어. 하루 종일 가게 안에서 잘 놀더니……."

사장님이 말꼬리를 흐린다. 철렁 했다. 갔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싶어 다시 물었다. 설 저 세상으로.

"네? 어떻게 됐는데요?"

"내내 가게 안에서 돌아다니더니 잠깐 사이에 가버렸어."

"아~!"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제야 철렁했던 마음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가버렸다는 말을 하는 슈퍼 사장님의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놀러온 딸이 잠깐 집 비운 사이 인사도 없이 가버렸을 때 표정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시 날 수 있게 되어서. 어제에 이어 점점 슈퍼 사장님이 좋아진다.

지금

살다보면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도 있고, 바보인척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진짜 바보가 되는 때도 있다. 뭐 좀 그렇게 산다고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되는 건, 정신을 차릴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1박2일 경주집

집에 다녀왔다. 누구나 집에 갈 때 가겨간다는 명품 한우를 사들고 아빠가 지은 새집으로 갔다. 나이 먹으면 이사를 잘 안다니는데 어째 울 집은 갈 때마다 다른 집에 사는 거 같다. 아파트가 싫은 아빠 덕에 결국 주택으로 이사 왔다.

엄마는 화장실이 두개이길 바랐고 아빠는 차가 두 대 주차할 수 있길 바랐다. 결국 엄마가 졌고 시골 작은 집에 마당만 덩그러니 넓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던 아빠는 거실에서 잠에 들었다. 근처 고모네 집에 잠깐 인사하러 갔었는데 그 집도 거실에 매트가 있다. 나이 들면 거실에서 자는 건 시골 할배 특성인가.

선거 운동하느라 고생 안 했냐, 돈은 많이 안 썼냐 그러시기에 잘 모르는 분들도 감사하게 후원금 보내주셔서 힘들지 않게 잘했다고 말씀 드렸다. 그냥 잘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었는데 오늘 새벽바람부터 고모가 와서 돈 봉투를 주고 갔다. 고생 했으니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삥 뜯은 기분이다.

10년 전 엄마 아빠 사진이 티비장 위에 있다. 식탁 옆엔 엄마 아빠가 먹는 약들이 즐비하다. 우리 조 여사, 이사장 많이 늙었구나. 그래도 오래오래 살아줘. 나 고아 되기 싫어.

보리(둘째동생)밭에 다녀왔다. 밭 구경도 하고 내 늙은 강아지들 보리네 강아지 커피 곁에 같이 묻어 주었다. 초보 농사꾼 보리는 이제 진짜 농부가 다 되었더라. 막 농기계도 있고 신기했다.

난 개뿔 힘이 없기 때문에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삽질을 했다. 밭 한 귀퉁이라 돌이 너무 많아서 땅 파는데 애를 먹었다. 작년에 커피 묻던 날에는 눈이 왔더란다. 그 눈을 맞으며 꽁꽁 언 땅을 1미터나 팠단다.

"니 그때 우예 팠노."

말을 해 놓고도 어떤 정신으로 팠을지 뻔히 알아서 맘이 아리다. 이제 울 돼지, 삐꾸, 커피 셋이 매일매일 안 외롭게 잘 놀았으면 좋겠다. 언니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겨우 1박 2일 있었는데 몸이 안 좋은데 갔다 왔더니 감기 기운이 더 심해졌다. 눈이 퀭하다. 집에 오자마자 한숨 잤다. KTX타면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집에 자주 좀 가야겠다.

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하면, 그냥 아무 말 안 해도 될 걸 왜 꼭 다른 말을 할까.

빡침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알라고 가르칠 생각은 전혀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내가 오래 분노할 수 있고, 못할게 없는 집요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작가의 말 : 우리 아빤 왜 여덟시만 되면 자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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