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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가난

[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가난

  • 기자명 이형린 동화작가
  • 입력 2022.06.25 00:00
  • 수정 2022.10.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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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 동화작가
이형린 동화작가

[뉴스더원=이형린 동화작가] 손님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평생 손님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아닌 언제나 낯선 사람으로."

길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푸하하 혼자 웃어도 아무렇지 않게. 숱한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도 날 아는 사람을 한명도 마주치지 않게. 그렇게 어딜 가든 낯선 손님 같은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나처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에게도.

상대

맘이 쓰이는 분께 연락을 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오래하는 하는 사람이 이기는거라고."

"뭐 상대가 상대 같아야 이기지."

무슨 말 인줄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 웃었다. 치졸하고 하찮은 상대. 악랄하고 더러운 상대. 그런 상대를 상대하다 보면 나 자신까지 진흙탕 속에 빠지기 마련이다.

멋있는 싸움을 하려면 꽤 그럴싸한 상대를 만나야 한다. 당당한 피해자가 되려면 꽤 괜찮은 가해자를 만나야 한다. 그게 참 더럽다.

시간

친구와 짧지 않은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을 때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친구가 말한다.

"시간 뺏어서 미안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맨날 말하잖아. 숨만 쉬고 있어도 내 시간은 소중한 거라고.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너한테 쓴 거야. 애써 시간을 쓴 거지."

"응. 누난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뭐래. 무슨 좋은 사람씩이나. 난 좋은 사람은 못될 거야."

눈매가 매서워지고 미간에 내천자를 새기지 않았다면 내 시간을 빼앗아 간 건 아니다. 시간을 빼앗기면 보통 그 표정이다. 그 표정이 아니라면 어떤 마음에서든 내가 애써 시간을 쓴 거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장미캔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셋이 들어왔다. 둘은 커플인 것 같고 다른 한명은 여학생의 친구인 듯 했다. 팔짱을 낀 여학생들 뒤를 남학생이 따라 다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가게 안을 구경했다. 나가려다 여학생이 카운터 앞에서 멈췄다.

"와! 여기 이거 팔아. 이거 살까?"

장미캔디를 가리키며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너 배 안 부르냐. 배부르다며. 너 배부르다 그래서 이 주스도 내가 한 컵 다 먹었거든."

커다란 빈 주스 컵을 흔들며 남학생이 말했다. 아마 여학생이 먹고 싶다고 샀는데 배가 불러 남학생이 몫이 된 모양이다. 나도 잘 그런다.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먹고 싶다고 사고 사고. 그렇게 남자친구가 살이 찌고.

"칫! 알겠어. 알겠다구."

여학생이 새침하게 말했다.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다. 친구와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갔다. 그 뒤를 남학생이 따라 나간다. 난 히죽 웃으며 귀여운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십초쯤 지났을까 남학생 혼자 다시 들어왔다. 말도 없이 장미캔디를 집어서 카운터 위에 놓는다. 난 푸하하 웃어버렸다. 돈을 내곤 인사를 하고 나갔다. 뒷모습을 보며 아까보다 더 크게 히죽 웃었다. 아! 녀석 좀 사랑스럽다.

오초쯤 지났을까 남학생이 또 다시 들어왔다.

"아 제가 두고 가서요."

"네?"

급하게 나가느라 뭘 두고 갔나 싶어서 어리둥절 쳐다봤다.

"제가 쓰레기를 두고 갔어요."

남학생은 카운터 위에 놓은 빈 음료수 컵을 집어 들었다. 아까 계산 할 때 놓아둔 모양이다. 음료수 컵을 들고 나가는 남학생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며 잘 가라고 했다. 빈 컵 두고 왔다고 돌아오다니. 아! 멋짐은 타고 나는 건가보다.

청소년을 알라나. 내가 요 근래 가장 환한 미소를 보낸걸.

침묵

누군가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 말고 글로 풀어보라고.

하지만 난 입술이 붙으니 손가락도 굳는 사람이더라.

내가 더 가난할 예정

주말 수업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 택시를 탔겠지만, 새 우산을 쓰고 싶은 마음에 신발 젖는 걸 감수하고 걷기로 했다.

학원 근처 편의점 앞에서 할머니 한분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박스를 줍고 계셨다. 이주 전, 날 너무 마음 아프게 했던 그 할머니란 걸 알아차린 건 할머니를 지나치고 나서였다.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쓸데없이 빠른 내 걸음은 늘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만든다. 박스를 곱게 접에 유모차에 실으신 할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할머니 혹시 기초수급 받으세요?"

인사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말하는 버릇은 어디서나 마찬가진가 보다. 무슨 소린가 하는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자제분은 있으신지, 생계는 어떻게 꾸려 가시는지, 기초수급 대상자에 들어 있는지.

할머니는 하소연과 푸념을 섞어 내 질문에 대답을 하셨다. 낯선 사람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한참을 서서 대답하시는 거 보면 할머니에겐 관심이 필요한 거지 싶다. 내 지갑에 달랑 오천 원뿐인 게 두고두고 한이 되었던 그날의 할머니와 오늘 긴 이야기를 나눈 할머니는 조금 같고 많이 달랐다.

그날이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막막해 박스를 줍는 가난함은 같지만, 나머지는 내 예상과 많이 달랐다. 할머니는 아들도 딸도 있다고 하셨다. 심지어 아파트도 있으시단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예전엔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단 말을 여러 번 하셨다.

하나뿐인 아들이 사업한다고 하다 재산을 다 들어먹었다고 했다. 작은 아파트 한 채만 남았다고 한다. 그마저도 몇 해 전 담보대출로 삼천만원만 쓰겠다는 소리에 승낙했더니 1억 삼천을 대출받아 썼더란다. 이제 팔아도 은행 빚 빼면 남는 게 없는 아파트 하나뿐이라고 했다.

내 목소리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와 조금 달라졌단 걸 할머니는 느끼지 못했다. 자식도 있고 집도 있어 기초수급 대상자는 되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렸다. 부모 등골만 빼먹는 자식이 무슨 자식이냐고 하셨다.

부모의 가난은 늘 자식이 만든다. 그렇게 키운 게 잘못이란 솔직한 마음은 접어뒀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뭘 알겠나. 나도 힘들 때면 엄마부터 찾는데.

그럼 아드님은 돈을 벌 수 있는 형편이 못되냐고 물었다. 어디 아프거나 혹 사업이 망해 사람이 망가졌나 해서였다.

"그냥 왔다 갔다 하지. 나이가 마흔 넷인데 이제 와서 뭘 해서 돈을 벌겠어. 맨날 나한테 돈 달라는 소리만 하고."

울컥 하는걸 참았다. 일흔 넷도 아니고 마흔 넷인데 뭘 해도 폐지 줍는 것 보단 더 벌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집으로 가신다기에 우산을 씌어 드렸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냥 맞기에는 빗방울이 꽤 굵어져 있었다.

새로 산 우산은 내가 쓰기엔 넘치게 큰 우산이지만 할머니와 박스까지 쓰기엔 턱없이 작았다. 왼쪽 어깨가 흠뻑 젖었다. 학원 근처 낯익은 아파트 앞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젖은 어깨 덕에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내 가난은 가난도 아닌 줄 알았는데,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분명 내가 그 할머니보다 더 가난할거다. 오늘은 지갑에 돈이 있었지만 드리지 않았다. 조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자식이 왠수라고 그래도 주고 주고 또 줬던 할머니와 부모가 봉이라고 달라고만 하는 아들. 둘 다에게 화가 났다.

그래도 할머니의 곤궁한 삶이 좀 나아지길 바란다. 내 곤궁한 삶도 좀 나아지길 바란다. 오늘은 치킨을 한마리만 시켜먹어야겠다. 두 마리 사먹기엔 아직 맘이 짠하고, 안사 먹고 참기엔 집도 없는 내 가난함이 짠해서 안 되겠다.

 

작가의 말 : 동생이 그랬다. 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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