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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것들에 대하여 '탑건: 매버릭'

[이은선의 픽(pick)무비]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것들에 대하여 '탑건: 매버릭'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06.25 00:00
  • 수정 2022.10.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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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탑건: 매버릭>은 무려 36년 만에 돌아온 <탑건>(1986)의 속편이다. 전작보다 앞선 시간대의 상황을 펼치는 프리퀄, 배우진을 교체해서 새롭게 만드는 리부트 등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이다.

영화 속 시간도 1편이 등장한 이후의 실제 시간만큼 흐른 뒤다. 매버릭(톰 크루즈)의 얼굴에는 어느덧 세월이 내려앉아있다.

최정예 전투기 파일럿을 양성하는 ‘탑건’ 훈련학교의 젊은 생도였던 매버릭은 교관으로 돌아온 상태다. 그가 원해서 택한 자리는 아니다. 전역하든지, 아니면 가르치는 일을 수락하든지.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딱 두 가지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을 함께 누린 전우들은 사라졌고, ‘여전한 현역’이자 명령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매버릭은 장군들의 눈엣가시다.

매버릭의 임무는 패기 넘치는 파일럿 생도들 가운데 적임자를 뽑아 위협국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미션에 투입시키는 것이다.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매버릭을 만난 적 없던 생도들은 여전한 그의 실력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들 중에는 과거 매버릭의 ‘윙맨’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도 있다. 그는 자신의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4년 동안 반려했던 매버릭을 증오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매버릭의 직접적 책임이 없음을 알지만, 그를 보면 아버지의 존재가 떠오르는 것 역시 억누르기 힘든 분노다.

영화는 단순하다. 인물들의 갈등은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해소된다. 우리는 파일럿들이 그들의 미션에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안다. 여기엔 최근 블록버스터들이 앞다투어 유행처럼 다루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슈, 필요 이상으로 어두운 영웅의 고뇌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진부하거나 요즘 시대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대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가. 정 반대다. <탑건: 매버릭>은 ‘올드 스쿨 블록버스터’의 정석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그 결과는 황홀하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추억을 소환한다. 매버릭은 전투기 외에 또 하나의 그의 상징과도 같은 바이크를 타고 활주로를 달리며 등장한다. 전투기 이착륙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활주로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미끄러지듯 내려앉는 전투기의 풍경들. 모든 것이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한 듯 보인다.

물론 달라진 것도 확실하다. 무인 조종기가 보편화되면서 인간 파일럿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탑건의 명성도 예전 같지 않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매버릭이라도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탑건: 매버릭>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골동품’으로 미션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우정과 사랑, 팀워크 같은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행동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고야 마는.

패기로 가득했던 청춘은 이제 관록의 교관이 되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젊은 세대와 교감하며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매버릭은 과거의 영광으로 우쭐대거나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

언젠가 모든 전투기가 무인으로 대체되는 때가 오겠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며,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세대를 존중한다.

톰 크루즈가 출연작마다 대역 없이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탑건> 1편에서도 직접 전투기를 몰았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히 마하의 속도를 견디는 과정을 스크린에 여과 없이 투사한다. 톰 크루즈뿐 아니라 젊은 생도들을 연기한 모든 배우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촬영에 임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점철된 화면, 수퍼 히어로 액션에 잠식당했던 최근의 경향성은 <탑건: 매버릭>이 보여주는 정직한 물리적 액션의 쾌감 앞에서 무색해진다.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낡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스크린은 여전히 무한한 경외감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

36년 만에 돌아온 정통 블록버스터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됐던 극장의 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히고 전 세계적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상황은 꽤 의미 있다.

<탑건: 매버릭>은 톰 크루즈라는 인물 그 자체이기도 하다. 새로운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36년 전 작품의 속편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식이라기보다 정석 그대로의 전설을 새로 쓴 수퍼스타를 향한 애정과 지지를 마음껏 보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귀하다.

톰 크루즈의 말마따나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마음 놓고 울어도 된다. 그것이 영화에 대한 사랑 때문이든, 여전히 스크린을 활력 넘치게 누비는 수퍼스타를 바라보는 기쁨 때문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속도를 견디며 자신의 인생을 조종한다는 감각 때문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흘리는 눈물은 그 모두가 응축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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