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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물웅덩이 속 외침…드러난 백제의 걸작품 ‘금동대향로’

[기획] 물웅덩이 속 외침…드러난 백제의 걸작품 ‘금동대향로’

  • 기자명 김은지 기자
  • 입력 2022.07.19 18:53
  • 수정 2022.09.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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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12일, 황급히 숨겨놓은 이유와 묻혀버린 백제 비극의 진실
2023년 발굴 30주년…끝나지 않은 연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사진=김은지 기자)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사진=김은지 기자)

[뉴스더원=김은지 기자] "따뜻한 물로 정성껏 흙을 닦고 녹을 걷어내니 비로소 그 자태가 드러났다" 

1993년 12월 12일 저녁 8시, 발굴현장에 다시 돌아 온 발굴팀. 금동대향로 주변을 30여 분쯤 닦아냈을까? 하늘로 길게 뻗은 봉황의 날개, 몸통을 받친 용, 활짝 피어오른 연꽃마다 새겨진 동물과 인물상의 절묘한 조화...온전한 형태를 드러내자 발굴팀은 '와' 외마디 탄성을 뱉어냈다. 

향로가 발견된 구덩이는 본래 공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 구유형 목제수조가 놓여 있던 곳으로 향로는 칠기함에 넣어져 이곳에 매답됐음이 뒤에 밝혀졌다. 

부여박물관 신광식 관장은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인부들이 퇴근한 뒤 연구원 네 명과 함께 다시 현장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야간 발굴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향로를 안고 서둘러 3km쯤 떨어진 부여박물관으로 달려간 신 관장. 그 당시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당일 발굴현장에선 인부 10여 명과 함께 작업하던 신 관장은 공방터의 구덩이에서 향로의 뚜껑이 드러나는 순간 '보통것이 아니구나' 직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진흙 속에서 완전한 형태를 드러내기 전 오후 4시께. 부여의 나성 밖 능산리 고분군 서쪽 골짜기에 있던 유적지 중 하나인 공방터의 수조 구덩이에서 백제왕실에서 사용됐을 법한 향로 하나가 1400여 년의 숨바꼭질 끝에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길이 135cm, 폭 90cm, 깊이 50cm의 숨어있던 향로는 손을 더듬거리며 수조 웅덩이에 겹겹이 쌓인 기와조각더미 밑에서 극적으로 찾아냈다. 

발굴현장은 ‘악전고투(惡戰苦鬪)’. 계속해 흐르는 물로 질척거리는 흙과의 작업은 발굴팀의 인내심을 건드렸을 법하다. 그러나 이들은 큰 바닷속에서 캐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진주를 건져내고 말았다. 

발굴 당시 백제대향로의 출토는 각종 언론매체에서 ‘동양 최고의 공예품’, '초국보급의 보물'로 일제히 1면 톱을 장식했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을 발굴팀. 다음날인 13일 문화체육부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를 보고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정상에 올려진 봉황의 모습 . (사진=김은지 기자)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 정상에 올려진 봉황의 모습 . (사진=김은지 기자)
뚜껑의 산악도는 삼산형 산들을 배경으로 기마수렵인물들을 포함한 신성풍의 인물들과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또 곳곳에 장식된 폭포, 나무, 불꽃문양, 귀면상 등은 산악도의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사진=김은지 기자)​
뚜껑의 산악도는 삼산형 산들을 배경으로 기마수렵인물들을 포함한 신성풍의 인물들과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또 곳곳에 장식된 폭포, 나무, 불꽃문양, 귀면상 등은 산악도의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사진=김은지 기자)​
연곷이 장식된 노신과 이를 물고 있는 용이 그 무게를 들어 올리는 듯한 모양새다. (사진=김은지 기자)
연곷이 장식된 노신과 이를 물고 있는 용이 그 무게를 들어 올리는 듯한 모양새다. (사진=김은지 기자)

“전형적인 백제의 작품입니다” 

향로를 확인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박산향로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기술과 예술성에서는 전형적인 백제의 작품으로 크기나 기법에 있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국보급이라는데 전원 의견을 일치했다. 

‘향로를 황급히 숨겨놓은 이유와 묻혀버린 비극의 진실’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백제는 7세기 동북아시아의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세력재편 과정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해 무참히도 짓밟혔고 그렇게 덧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심지어 그들이 기록으로 남겼다는 역사서들마저 철저히 망실돼 이제 그들에 대한 연구는 김부식이 신라사를 중심으로 쓴 <삼국사기>와 각기 자기들의 입장에서 써 내려진 중국과 일본의 일부 사서들, 그리고 일부 유적지에서 출토된 극히 영성한 유물과 고고학적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그 결과 무령왕릉의 발굴, 해상 백제에 대한 새로운 규명, 그리고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이 높은 풍납토성의 일부 발굴과 같은 획기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백제사는 여전히 패망과 비운의 망령을 떨치지 못한 채 우리 역사의 가장자리를 배회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백제의 비극적인 역사를 그 어느 것보다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백제금동대향로라고 밝힌다. 또 나당연합군이 밀려오는 긴급한 상황에서 황급히 숨겨놓은 것이 역력했다고 전한다.

향로를 가지고 피신할 곳조차 없어 물구덩이 속에 넣고 훗날을 기약하며 묻은 것이다. 그렇게 진흙 속에서 형체를 드러낸 백제대향로의 모습은 그 당시 백제인들의 절망과 비극의 역사를 오늘에 전하기에 충분했다. 

“봉황과 용의 대비적 배치, 각종 동식물과 인물상의 조화”

향로는 전체 높이가 62.5cm로 모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의 봉황과 뚜껑의 산악도, 연곷이 장식된 노신과 이를 물고 있는 용이 그 무게를 들어 올리는 듯한 모양새다. 

꼭대기에 올려진 봉황과 뚜껑의 산악도는 하나의 주물로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향로는 본래 세 부분으로 분리되어 제작되어 있는데 본체는 가운데 테두리의 흐르는 구름문양을 경계로 위쪽의 삼산형 산악도와 아래쪽의 연지의 수상생태계로 나뉜다. 

산악도는 삼산형 산들을 배경으로 기마수렵인물들을 포함한 신성풍의 인물들과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또 곳곳에 장식된 폭포, 나무, 불꽃문양, 귀면상 등은 산악도의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또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위를 향해 꼬리가 치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봉황과 용의 대비적 배치나 노신의 연꽃과 산악도에 새겨진 각종 동식물과 인물상의 조화. 그리고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기러기의 가무상 등으로 볼 때, 백제대향로는 동아시아의 향로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초국보급'의 유물임이 확실했다. 

'따뜻한 물로 정성껏? 씻지 않았다면?'

하지만 향로의 보존처리 과정이 미흡했을까? 발굴팀은 당시 유물에 묻은 진흙 등의 이물질을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어버렸다. 출토 즉시 채취, 보존해야하는 유물을 말이다.

그해 12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뒤 정밀진단한 결과 향로는 이미 악성 청동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바로 청동의 녹을 제거하기 위한 보존처리에 들어갔고 일반에게 공개하려던 계획은 뒤로 늦춰졌다.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했는지는 의문으로 남겨져 있다. 또 향로의 구성이나 여러 상징 체계들이 지닌 의미 또한 궁굼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서정록 지음/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학고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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