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박현수의 허튼소리] 벌집 건드린 학제개편, 벌침 쏘인 정부

[박현수의 허튼소리] 벌집 건드린 학제개편, 벌침 쏘인 정부

  • 기자명 박현수 기자
  • 입력 2022.08.05 00:00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 성공 여부, 국민 신뢰에 달렸다.

박현수 본사 편집인
박현수 본사 편집인

[뉴스더원=박현수 기자] 한국인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수많은 민족 중 자녀교육에 목숨거는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과 함께 1,2위를 다툴 정도다. 때로는 유대인을 넘어 선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런 교육열은 한반도에서 5천여 년을 살면서 겪어온 풍파가 축적되면서 형성됐다.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의 교육열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일제 36년은 가혹했다. 민중들은 가진것 모두를 빼았겼다. 인적 자원과 광물은 물론이고 식량까지 수탈 당했다. 모든것을 앗아간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가 교육이였다. 백성들은 교육에 목숨을 걸었다. 

해방 후의 한국에서 교육열은 활활 타올랐다. 6.25의 폐허에서 우리가 빠른 속도로 성장의 길로 들어선 원인을 꼽자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게 교육이다.

나는 못먹어도 자식들은 굶기지 말자. 나는 못배웠어도 자식들은 배우게 하자. 그래서 이 지독하고 잔인한 가난의 멍에를 벗어 버리자. 이게 그때 이땅에서 험한 삶을 살았던 부모들의 절절한 바람이였다.

나라가 좀 먹고살만해진 80년대 이후에도 교육열은 식지 않았다. 지성의 발견과 자아 실현이라는 고상한 교육 목적과는 달라 남보다 잘돼야 한다는 천박한 출세주의가 주를 이루긴 했지만 자녀교육은 모든 부모들의 지상과제였다.

교육열이 높다보니 부작용도 있다.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가 지나친 교육비 부담이라는게 단적인 예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고 절망끝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최고라는 부끄러운 기록도 부작용의 대표사례다.

이런 교육제일주의 사회에서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면 동티나기 십상이다. 정부가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아니고 불쑥 내던진 만5세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학제 개편안은 동티의 대표적 사례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업무보고에서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출발선을 동등하게 하고 저출산 예방효과도 있다고 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발끈들 했다. 한밤중 어두운 밤거리에서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것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전국의 맘카페와 학부모 단체들을 중심으로 정책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박 부총리는 2일 학부모 간담회에서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정책을 폐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물에서 숭늉찾다 안되니 구정물이라도 마시겠다는 것이다.

신속 추진을 강조하던 대통령실도 신속하게 입장을 바꿨다. 여론 수렴과 공론화를 강조하며 정책의 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여차하면 폐기도 가능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여론은 싸늘하다못해 냉소적이다. '교육정책이 애들 장난이냐' '아니면 말고 무슨 간 보는거냐. 생각은 하고 발표한거냐 등등 온갖 질책이 이어졌다. 

교육처럼 민감한 문제를 섣부르게 건들면 안된다. 충분한 사전정지작업이 필요하다. 여론수렴은 필수적이고 공론화는 당연하다. 이런 전후과정을 생략하고 불쑥 던진 정책은 선무당 사랍잡는 격으로 정부를 잡아 버릴수도 있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국민신뢰를 얻느냐에 달려있다.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정책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할 수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는 어리석다. 어리석음의 화는 고스란이 본인에게 돌아간다. 

청나라 말기 나라를 시원하게 말아먹는데 일조한 서태후가 얘기했다. '민심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민심의 물결은 거세다. 교육부는 지금부터라도 큰 숨 한번 쉬고 하늘도 한번 처다보고 멀리 있는 지평선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끊어진 길은 거기서 부터 다시 시작된다.

저작권자 © 뉴스더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