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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 무비] 몸과 쾌락을, 인생을 긍정하는 당신을 위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이은선의 픽(pick) 무비] 몸과 쾌락을, 인생을 긍정하는 당신을 위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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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낸시(엠마 톰슨)는 평생 단 한 번도 오르가즘을 경험해 보지 못한 60대 여성이다.

몇 년 전 사별한 남편과의 섹스는 해치워야 하는 집안일에 가까웠다. 은퇴하기 전까지 학생들에게 종교와 윤리를 가르쳐왔던 낸시는 육체적 쾌락에 있어 누구보다 보수적인 삶을 살았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이랬던 낸시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비범한 선택을 내리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세련된 매너를 갖춘 젊은 남성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는 낸시가 ‘퍼스널 서비스’를 통해 만난 사람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점차 만남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낸시는 리오를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즐겁게 파악해 간다.

처음에는 이 ‘서비스 이용’에 도덕적 딜레마와 불편함마저 느끼던 낸시는 급기야 이렇게 외치게 된다. “이건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여야 해!”

각본을 쓴 작가 케이티 브랜드가 처음으로 떠올린 아이디어는 그대로 이 영화의 도입부가 됐다. 60대 여성이 젊은 남성을 기다리며 호텔 방에 앉아있다. 도착한 남성이 문을 노크하고, 여성은 문을 연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

영화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리오 그랜드를 좇으며 문을 연다. 그가 도착한 곳은 낸시가 먼저 도착한 호텔방이며, 그때부터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호텔 내부에서만 벌어진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불만스러운 부분을 찾는 것은 쉬워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생각을 갖기는 어렵다.

이는 사회적 학습의 부정적 결과이기도 하다.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미의 기준은 다양성에 대한, 나아가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의 몸은 보기 좋게 가공을 거친 이미지라는 비정상적 기준에 의해 손쉽게 평가되고, 혐오당한다.

하물며 쾌락의 경우라면 어떨까. 주체가 여성이라면 평생의 금기어에 가까울 것이다. 쾌락은 즐거움에 닿아있는 가치가 아니라 수치심과 고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그 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영화는 두 사람의 대화로 유추할 수 있는 낸시의 과거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끄러운 것 혹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과정 역시 이야기한다.

음침하고 어두운 영화를 상상한다면 편견이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 안에서 몸과 섹슈얼리티를 말한다.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대화가 섹스와 교감의 일부로서 섬세하게 묘사된다.

낸시의 시점에서 이 모든 것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난생 처음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솔직해지는 자기 탐구의 과정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극적인 갈등 상황이 발생하긴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대부분 안전하고 긍정적이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전한다. 

입장을 뒤바꿔 젊은 여성 성 노동자의 서비스를 구매하는 중장년 남성의 이야기라면 영화의 톤 앤 매너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사회 안에서의 젠더 권력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간의 숱한 영화들을 통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목격해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모두의 쾌락을 위해 성 노동 서비스를 구매하자는 안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다.

영화는 쾌락을 추구하는 나이 든 여성, 나아가 성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낙인 혹은 편견에 부드럽게 노크하고 말 걸기를 시도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섣부른 낭만성을 담보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도 사려 깊은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엔딩은 비범하고 감동적인 지점마저 있다.

인생은 노년에도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여정이다. 당연하지만,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간의 시간을 통해 각자의 내면은 보다 풍성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태도는 현실을 수용하지 못한다. 나이 든 여성은 어느 순간 결혼과 육아에 인생을 바치고 허무와 권태만 남은 무성적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일깨운다. 젠더를 떠나 당신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성적 욕망을 말하면 ‘헤프다’는 취급을 받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보다는 혐오하도록 조장하는 비정상적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긍정해도 된다고. 쾌락은 즐거운 것이고, 자신의 방식대로 추구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이 영화는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 엠마 톰슨의 용기로부터 비롯된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60대에 접어든 이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몸을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낸시를 연기하면서 내가 나의 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사회적 기대에 기반해 비정상적으로 가공된 몸을 보는 게 익숙하다. 이제는 미디어가 자연스러운 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내 허벅지가 싫다’고 말하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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