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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 무비] 스릴러의 문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어떤 현실 '홈리스'

[이은선의 픽(pick) 무비] 스릴러의 문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청년 세대의 어떤 현실 '홈리스'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09.24 00:00
  • 수정 2022.10.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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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칼럼니스트
이은선 영화칼럼니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홈리스>는 제목 그대로 집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특이점이 있다면 인물들의 연령대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어린 부부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아직 10대의 앳된 티를 채 벗지도 못한 청년세대다. 그들은 인생을 살면서 내린 선택들로 인해 어느 시점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마주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영화의 시작점은 부부가 전세금 사기 피해를 당한 이후다. 당장 몸을 뉠 곳도 없는 세 가족은 매일 밤 찜질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한결은 배달, 고운은 아파트 단지에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라고는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의 수준이다.

가족이 벼랑 끝까지 내몰렸을 때 한결은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평소 초밥 배달을 자주 가며 느슨한 친밀함을 쌓았던 독거노인의 집이다. 한결은 할머니가 미국에 있는 자식들을 보러 간 동안 집을 봐주는 조건으로 공간을 내어주었다고 설명한다.

한결의 말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젖먹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불안하게 이동하는 데 지쳤던 고운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지난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홈리스>는 임승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학창 시절 가세가 기울면서 찜질방과 곰팡이 핀 반지하 등을 오가며 살았던 그의 개인적 경험도 반영됐다.

빈곤 문제, 그중에서도 취업과 관련한 노동 이슈가 아니라 주거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청년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조금은 다른 결을 입는다.

계절 배경은 여름이지만 여느 청춘영화가 그리듯 청량한 풍경과도 거리가 멀다.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땀의 촉감, 화면 밖으로 풍겨 나올 듯한 악취가 고인 공기가 계절의 풍경을 대변한다. 이들이 머무는 여름의 고온과 습도, 쾌적하지 못한 잠자리는 최소한의 위생 그리고 생존의 문제를 은유한다.  

영화는 집을 둘러싼 동시대의 다양한 면모들을 들여다본다. 전세 사기, 청년 세대의 거주 문제, 복지 돌봄이 필요한 독거노인 세대, 쪽방촌과 도시에 만연한 재개발의 풍경들이 영화의 세계를 구성한다.

머물 곳이 없는 고운이 배포하는 전단지의 정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건물 임대를 통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현혹하는 광고다.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닌 부동산의 액수만으로 취급되는 사이, 어느 공간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들의 삶은 유령의 그것처럼 보인다. 재개발 결정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텅 빈 폐허로 남은 집들과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공존하는 도시의 밤은 스산하다.

사회적 이슈를 주목하되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 자체는 장르영화의 문법을 닮았다.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한결의 태도와 가족이 임시로 거주하는 독거노인의 집은 미스터리를 증폭한다. 긴장을 촉발하는 상황 묘사, 현실과 인물들의 무의식을 연결해 구성한 판타지 장면 등은 스릴러로서의 충분히 매력적이다.

한결이 홀로 감추고 있던 비밀이 공유되면서 인물들이 각자 죄의식의 무게를 버티거나 역으로 발악하듯 상황을 이겨내려는 전개의 흡인력도 좋은 편이다.

인물들의 구체적인 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한결과 고운이 나누는 대화의 토막을 통해 그들이 통과해온 시간의 일부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고운은 조금은 뻔뻔하게 느껴질 만큼 노인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는데, 관객의 입장에선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가치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영화가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충분히 제시하며 특정 성향의 인물로 상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결과 고운, 홀로 살아가던 할머니의 공통점은 사회적 방관 그리고 개별적인 상황에 맞춰 촘촘하게 이뤄지지 않는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 할머니랑 우리랑 똑같아. 아무도 우리한테 관심 없어”라는 고운의 대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잠식하는 무관심의 공포라는 주제를 정확하게 가로지른다.

비단 영화 속 인물들만 홈리스로 규정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부모 세대의 지원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집을 마련하는 방편을 구할 길이 없는 현재의 청년 세대 전체를 냉정하게 지칭하는 단어에 가깝다.

<홈리스>는 몇 년 전 개봉한 <소공녀>(2018)와 흥미로운 대구를 이룬다. 전고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주인공 미소(이솜)는 가사도우미를 직업으로 택해 일하고 있다.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모금이 매일을 버티게 하는 낙이다. 밥, 위스키, 담배, 세금, 월세, 약 값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지출 항목만 무리 없이 메울 수 있다면 미소는 만족한다.

새해가 되고 담배 가격과 월세가 동시에 오르자 미소는 선택한다. 담배와 위스키라는 기쁨을 유지하는 대신 집을 포기하기로.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하는 미소의 가치관은 대책 없이 자신을 내팽개치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삶’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하나의 지향성을 보여준다.

몇 년 뒤에 우리에게 찾아온 <홈리스>는 <소공녀>에 드리워졌던 일말의 낭만성을 전부 걷어내고 바라본 현실의 초상이다. 단지 영화 속 상황이라기엔, 그 사이 모두가 더욱 절실하게 생존에 필요한 기본권을 돌아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증명으로 읽힌다. 사회의 그늘은 세대를 따지지 않고 덮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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