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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나는 호랑이

[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나는 호랑이

  • 기자명 이형린 동화작가
  • 입력 2022.10.01 00:0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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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 동화작가
이형린 동화작가

[뉴스더원=이형린 동화작가]  옷장 속 철학

신기하지. 어디 가려고 할 때마다 옷이 없다. 분명 옷걸이에 옷이 잔뜩 걸렸는데 옷이 없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분히 철학적인 상태에 놓인다. 신기하지 뭐야.

성경책

결국 책을 가지러 가게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가게로 가기 전, 편의점에 잠깐 들러 초코칩 쿠키를 사기로 했다. 편의점 앞엔 횡단보도가 없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상가를 지나 반대쪽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지하상가 입구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종종 마주치는 할아버지는 KFC 할아버지마냥 인상이 좋다. 늘 그 곳에서 작은 성경책을 나눠준다. 예전에 동생이 성경책을 받아 온 적이 있다.

"왜 받아오노."

"그럼 어떻게 해. 주는데 안 받을 수가 없잖아."

울상을 하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주면 싫던 좋던 받아야 하는 성격이다. 호구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읽을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받아오노. 그것도 다 돈 주고 사서 주는 걸 텐데."

할아버지는 이 추석날 왜 성경책을 나눠주러 왔을까. 정치인 마냥 사람 많은 명절이라 그랬을까. 나 마냥 추석이라도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랬을까.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여러 번 사양을 해서 더 이상 내게 성경책을 건네진 않는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도 인사를 건넨다. 지하상가를 지나 편의점에서 초코칩 쿠키를 샀다.  다시 지하도를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곳에 있다.

다시 온 날 보며 웃는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왜 그 순간 내가 손을 내밀었는지는 모르겠다. 놀란 표정의 할아버지는 이내 아까의 웃는 얼굴로 성경책을 건넨다.

난 마치 교장선생님께 상장이라도 받는 듯 제자리에 서 두 손으로 성경책을 받았다. 다시 인사를 꾸벅 하곤 가게로 걸어갔다. 바람이 조용하고 서늘하게 분다.

가게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다 읽고 나오니 깜깜하다. 할아버지는 가고 없다. 아까의 일이 영화처럼 다시 내 눈앞으로 지나간다. 왜 그랬을까. 왜 손을 내밀었을까.

오늘 읽은 책은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늘에 적당하기도, 적당하지 않기도 하다.

찹쌀떡

어릴 때부터 찹쌀떡을 좋아했다. 뽀얗게 입술에 흰 가루를 묻히며 먹는 쫀득한 찹쌀떡 말이다. 찹쌀떡이란 게 사실 먹을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였나. 찹쌀떡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엄마가 떡집에서 찹쌀떡 한 박스를 해오셨다.

"웬 찹쌀떡을 한 상자나 했노?"

"실컷 무라고."

난 정말 찹쌀떡을 실컷 먹었다. 아직도 찹쌀떡하면 그 때 한 상자 가득한 찹쌀떡을 보며 설레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만 그렇게 가끔 뭔가를 잔뜩 사올 때가 있다.

늘 이유는 실컷 먹으라는 거였다. 먹고 싶은걸 그렇게 한번이라도 실컷 먹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늘 그득한 만족감으로 기억에 남는다.

갑자기 찹쌀떡이 너무 먹고 싶다. 찹쌀떡을 먹은 지 오래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아까 낮에 이층 주인집 아줌마랑 두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혼자 살다 마흔 여섯에 암으로 죽었다는 큰 딸, 이십년을 돈 벌고 살림하고 시댁 뒷바라지 하느라 여행한번 못가보고 살다 결국 이혼했다는 둘째 딸,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와 살다 이혼하고 알코올중독이 되었다는 아들.

"내는 세상에서 우리 매누리가 젤 무섭다. 말 안 통하는 외국 사람이라도 그래 잘해주면 고맙다 할 낀데. 이년 저년 소리하고 내 때리면서 달려드는데. 내는 이 세상에서 매누리가 젤 무섭다."

아줌마는 아줌마의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자식 셋의 삶을 두 시간 동안 조근조근 웃으며 말했다. 힘겨운 시간들이었으리라. 엄마들은 모두 그런가보다. 힘겨운 시간들을 웃으며 담담히 말한다.

갑자기 찹쌀떡이 먹고 싶다. 실컷 무라고 하던 엄마도 보고 싶다.

마음을 덜어낼 줄 몰라서 닫아버리는 사람이더라.

태몽

엄마는 날 가졌을 때 호랑이 꿈을 꿨다고 한다. 딸 넷을 낳고 마흔에 늦둥이로 아빠를 낳은 울 할매는 그 얘기를 듣고 영락없이 아들이라고 좋아했단다. 할매의 기대를 깨고 딸로 태어났다. 엄마는 가끔 홍홍홍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가 쫓아 오길래 열심히 도망쳤지. 원래 호랑이한테 물리야 아들인데 죽으라고 도망가서 안 물려서 딸인갑다."

그래도 늘 호랑이 꿈꾸고 낳은 딸이라고 잘 될 거라고 믿었다.

요즘 내가 고양인줄 아는 사람들을 꽤 본다. 그르릉그르릉 거린다고 고양인줄 아나보다. 그르릉 거리기는 고양이나 호랑이나 마찬가진데.

엄마는 날 가졌을 때 호랑이 꿈을 꿨다. 난 그때부터 늘 호랑이였다. 엄마가 그렇게 키워줬으니까. 어흥!

 

작가의 말 :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난 정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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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2022-10-08 15:13:14
저도 제가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모르겠다 생각할 때가 있는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