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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 무비] 수수께끼 같던 예술가이자 나의 아버지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이은선의 픽(pick) 무비] 수수께끼 같던 예술가이자 나의 아버지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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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칼럼니스트
이은선 영화칼럼니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평생 한 예술가를 대표하는 상징이 있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쿠사마 야오이의 호박 같은 것. 김창열(1929~2021) 화백의 경우엔 물방울이다.

1972년 공개한 작품 ‘밤에 일어난 일’을 시작으로 그는 50년간 오로지 물방울만 그렸다. 세상은 그런 그를 ‘물방울 화가’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 청년기를 보낸 김창열 화백은 1969년부터 프랑스에 정착했다. 캔버스 뒷면에 뿌려놓은 물이 만든 물방울의 신비로움에 우연하게 매료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백남준, 김환기, 박서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화백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2012년 한국 화가 최초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인 레지옹 도네르 오피시에를 받았다.

왜 물방울인가. 김창열 화백에겐 평생 이 질문이 따라다녔다. 그때마다 그는 속 시원한 답을 말한 적이 없다. 모두가 각자의 짐작 안에서 머무를 뿐, 누구도 물방울의 진정한 뿌리를 찾지 못했다.

그건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화백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나아가 “평생 산타클로스보다는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 같았던” 아버지라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아들은 카메라를 들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 김오안이 프랑스의 사진가이자 시노그래퍼(공연과 전시에 사용하는 시각 관련 콘텐츠 연출) 브리짓 부이요와 함께 공동 연출한 다큐다.

김오안에게 화백은 물방울만 그리는 예술가이자 마냥 다정하지만은 않은 아버지, 침묵으로서 주변과의 관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이방인이었다.

감독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뒤 직접 낭독한 내레이션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 스스로 자각하기 위해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 했다.”

백과사전식 나열이 아닌 시청각을 중심으로 한 공감각적 접근으로 인물에 다가선 이 다큐는 영상으로 쓴 아름다운 시처럼 보인다. 포착하는 대상을 닮는 다큐의 특성상, 화백 본연의 모습과 그의 작품처럼 고요하고도 소란하지 않은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 곳곳을 채우는 김오안 감독의 내레이션은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하나의 글이다. 그가 회상하는 화백에게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했기에 발견될 수 있는 다각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감독은 화백을 “늙은 남자이자 고집스러운 생각을 가진 어린아이”이자, 어린 시절 형과 자신에게 동화 대신 달마 대사의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괴짜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꺼풀을 잘라버린 수행자와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팔을 잘라버린 인물의 이야기만 들려주던 아버지를 두고 감독은 “아버지가 선불교의 폭력성에 매료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가 하면, “자신의 팔을 자를만큼의 결기와 눈꺼풀을 잘라내는 의지가 광기가 되어 아버지의 완고함을 키웠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는 화백이 물방을 발견한 때를 “수도승처럼 살아온 그가 평생 기다려온, 달마 대사의 순간이었다”라고 말한다.

화백의 작품을 포함해 다큐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물방울의 세상으로 이끈다.

힘차게 흐르는 강물, 작은 물방울들이 얼어붙어 완성된 설원의 풍경, 손자들이 부는 비눗방울, 전투기에서 떨어지는 동그란 낙하산들. 물방울은 아름답고 온전한 것이기도 하지만, 화백을 피와 죽음에게로 가까이 묶어두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청년 시절 전쟁을 겪으며 가까이에서 목격한 숱한 죽음들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평생 화백을 붙들었다. “죽음이 아직도 아버지 작업의 일부이냐”고 묻는 감독에게 화백은 이렇게 말한다. “진혼곡이지. 일시적인 게 아니야. 계속되지. 추모를 위한 노래를 멈추지를 않아.”

3.8선의 경계를 넘으며 달리기 전 기도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화백의 모습은, 다큐의 카메라가 포착한 가장 진솔한 순간 중 하나다. “신이시여, 만약 당신이 존재한다면 나를 도와주세요(Mon Dieu, si vous existiez, aidez-moi).”

 
평생 물방울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렸던 예술가. 그런 아버지와 자신, 혹은 아버지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과 틈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아들은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감독의 말처럼 물방울을 하나 그리는 건 구상이지만, 수백수천 개를 그리는 것은 계획이다. 나아가 수십만 개를 그리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렇게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런 종류의 예속력을 가질 수 있을까” 질문하던 다큐의 카메라는 어느 순간 ‘왜 물방울인가’가 더는 중요한 질문이 아님을 말한다. 불안과 공포를 지우는 존재이자, 화백의 인생을 물들였던 진한 피를 순수한 물의 형태로 바꾸어 낸 수행의 결과물이다.

물방울은 단순한 하나의 오브제이자, 세상의 모든 것이다. 누군가의 철학이자 온전한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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