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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70대 후반에 시집 발간' 백명자 시인

[단독 인터뷰] '70대 후반에 시집 발간' 백명자 시인

  • 기자명 황환택 대기자
  • 입력 2022.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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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시를 쓰는 것은 분명 외롭고 배고픈 일이나 나에게 시는 신앙이요 산소다”

70대 후반에 네 번째 시집을 낸 백명자 시인. (황환택 대기자)
70대 후반에 네 번째 시집을 낸 백명자 시인. (황환택 대기자)

[뉴스더원=황환택 대기자]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의 날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만든 기념일이다.

노인의 날 제정은 대한민국의 전통적 풍속인 경로효친 사상(敬老孝親 思想)을 고취하고, 노인의 수고를 치하하며, 근래 주요 사회문제로 떠오른 노인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날인 것이다. 

노인의 날을 앞두고 한 노인이 발간한 시집 한 권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70대 후반 백명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가 바로 그 시집이다. 

백명자 시인은 할머니 시인이다. 1947년 출생이니 우리 나이로 70대 후반이다. 그녀는 지금도 열심히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부군의 병을 간호하기 위하여 시작한 간병인 생활이 직업이 되어 17년째 요양원 어른들과 애환을 나누며 아픈 생활을 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에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는 부군과 요양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내이자 요양보호사로서 그들을 바라보는 휴머니즘이 시 곳곳에 녹아 있다.

백명자 시인을 만나 시인의 시 세계와 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백 시인과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주>

백명자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ruro Edition) 
백명자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ruro Edition) 

늦었지만 네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이 시집의 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 나이 벌써 76이다. 평균 수명이 늘었지만 사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르는 나이다. 그래도 아직 건강하게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이렇게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일(2일)이 ‘노인의 날’이다. 늦은 나이에 시집을 내는 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흔한 것도 아니다. 언제 다시 시집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시집을 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에는 오랜 투병 생활을 하는 부군과 요양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안다

남편은 원래 금은보석상을 운영했었다. 그러다가 2005년 4월 교통사고로 인해 뇌병변 중증 1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머리와 가슴에 의료기를 부착하고 툭하면 응급실을 안방 삼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은 이제 세상의 것은 모두 다 세상에 돌려주고 삶의 마감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남편을 보살피며 같은 처지에 있는 여러 어르신의 외롭고 쓸쓸한 삶을 보듬고 달래면서 틈틈이 쓴 글을 이번에 펴낸 것이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자 시의 제목인 '봄이요 봄, 일어나요'를 읽어보니 부군 이야기인 것 같아 마음이 찡하다
 

자신이 반쯤, 차에 깔려

생명줄을 당겼다 놓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누운 사람

바윗덩이만큼 부어오른

육신이 붕대에 감겨

중환자실에 미라처럼 심신을 누인 당신

살에 꽂은 수액줄

코에 넣은 산소줄

고요는 차라리 절규를 기다리며

당신의 기적을 찾고 있나

봄이요 봄, 일어나요

아무런 기별도 없이

어디서 민들레 꽃씨 날아와

고향의 봄으로 나들이 가잔다

나의 당신의 얼굴, 면도를 하고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는다

병실 가득 햇살이 찬다 

- '봄이요 봄, 일어나요' 전문 - 

 

사실 이 시는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 이야기다. 바윗덩이만큼 부어오른 육신이 붕대에 감겨 중환자실에 미라처럼 누워있다. 그런 남편의 얼굴을 씻어주고 면도하고 손톱, 발톱을 깎는다.

그런데 어느 날 봄이 온 것이다. 민들레가 봄나들이 가자 하는데 남편은 수액 줄, 산소 줄을 달고 봄을 맞이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봄이요 봄, 일어나요” 그랬더니 남편은 일어나지 못해도 병실 가득 햇살이 차더라. 그런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다. 

등단이 2007년 9월인데 그럼 그때가 회갑이다. 백 시인에게 시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늦은 나이에 등단하고 이렇게 시를 쓰는가 

시는 나의 삶이요 신앙이요 산소다. 시가 없는 나의 인생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사실 나는 꿈 많은 문학소녀였다. 그러나 세상을 바쁘게 살다 보니 시를 쓸 기회가 없다가 늦은 나이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시를 쓰게 되었다.

그렇게 쓴 시가 모이게 되어 환갑이 지나 월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하게 되었고, 그해 12월에 첫 시집 <질경이의 기도>를 출간하였다. 그 이후 2012년 <죽지 않는 나로 살게 하소서>, 2017년 <꽃불>을 출간하였다.

정호승 시인은 등단 50년 기념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내면서 “난, 아직도 시가 고프다”고 했다. 백 시인도 시가 고픈가? 

나는 더 시가 고프다. 정호승 시인은 50년 시를 썼지만 나는 이제 겨우 17년 시를 썼다. 그러니 적어도 33년을 더 시를 써야 50년이 된다.

시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인의 의무는 시를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시를 쓸 것이다. 전 대통령, 전 장관은 있어도 전 시인은 없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시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시를 쓴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많은 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자랑을 좀 해달라 

내 시가 명시가 아닌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좋게 봐주시어 상을 많이 받았다. 전국 한밭 시조 백일장 차상, 창조문학 시 부분 대상, 월간 문학세계 시 부분 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부족한 시를 좋게 보아준 여러분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황환택 대기자)
(황환택 대기자)

시를 읽다가 '그냥 살면 되는 것을'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인생을 달관한 시인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을 다 가져갈까

천만년을 살다 갈까

그냥저냥 살다가

오라 하면 가면 되지

멋진 인생 살았다는 어르신

대충 살아오신 어르신

다 모인 요양원 생활

한 계절 자랑하다 지고 마는 꽃

후회 없이 살다 가면 되는 것을

어차피 옷 한 벌 준비 않는

사철 벗은 바람처럼

살다 가면 되는 것을

아등바등 살아도 한세상

그냥 살아도 한세상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한 후회

막다른 골목에 와 계신 어르신

그냥 순리대로 살걸, 껄껄

세 살배기 아기가 되어 가는

치매 어르신의 넋두리

그냥 살면 되는 것을

 - '그냥 살면 되는 것을' 전문 -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요양원에 치매 어르신이 계신다. 그분이 가끔 혼잣말로 “순리대로 살걸, 껄껄”하며 웃는 것을 보았다. 나도 세상 살아보니 별것 아니더라. 세상을 다 가져갈 것도 아니고 천만년을 살 것도 아니다.

그 어르신의 말처럼 그냥 순리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어르신의 말처럼 그냥 살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 시인의 시를 읽을 독자에게 한마디 해달라

시는 시인의 것임과 동시에 독자의 것이다. 관객 없는 연극이 존재할 수 없듯이 독자 없는 시도 존재할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시를 쓸 것이다. 부족한 시를 읽어준 내 주위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특히 곧 세상 것 다 버리고 떠날 준비하는 남편과 요양병원에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는 어르신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백명자 시인은 1947년 논산에서 출생,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남대학교 사회 문화·행정 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2007년 7월 월간 《문학세계》에 시로 등단하였고 2013년에는 《한국수필》에 수필로 등단하였다.

현대 한국문협 회원, 월간 《문학세계》 이사,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협회 이사, 대한한남문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부여군지부 감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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