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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 칼럼] 한글날, 詩와 시인은 무엇을 하는가

[김재열 칼럼] 한글날, 詩와 시인은 무엇을 하는가

  • 기자명 김재열 칼럼리스트
  • 입력 2022.10.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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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 언론인
김재열 언론인

[뉴스더원=김재열 칼럼리스트] 10월 9일 한글날이다. 예전엔 이날을 기리기 위해 곳곳에서 한글 백일장을 열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한글을 예쁘게 다듬고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몫을 하는 사람은 시인이라 할 것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라, 그들은 시로써 한글의 아름다움을 재창조한다. 시인의 부진하면 한글이 흔들린다. 이런 시기에 시와 시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창 시절 나름대로 시를 열심히 쓴다고 썼다가 한순간에 시작을 중단하고 관심을 끊었다. 여러 사념적 정황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말장난 같기만 한 시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도 시와는 전혀 무관하게 지냈다. 30년이 지나서 우연히 남아있던 옛 학창시절의 습작 노트를 발견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보관하자니 부담이 됐다.

궁리하다 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이왕이면 등단 절차를 거쳐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 출판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 권유가 있어 시인으로 등단하여 시집을 냈다.

이를 기화로 동인회 가입을 하고, 지역 문인단체 직함을 맡기도 하고, 문학관련 심사까지 하는 등 다소간의 활동을 해보니 문학계의 현실이 예전과 많이 달랐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문학단체 대표는 문학적 성취와 인품으로 문단의 얼굴로 자타 인정할만한 사람들이 뽑혔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런 전통 또는 관행이 사라진 듯 하다.

직선제로 뽑는 탓인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는 상당수 문학적 명성과 지명도와 관계없이 세를 형성한 사람이 당선되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세 싸움이 되다보니 치열한 선거전으로 인한 말썽과 후유증이 잇따라 나타났다.

역대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 선거공약 이행 공방, 인신공격 등 갖가지 말썽이 속출하면서 문단과 문학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제28대 한국문협 이사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전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작품 표절 시비와 함께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 문단의 이같은 불미스런 행태는 지방 선거전에도 전이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문학적 업적 없이 세 싸움으로 이기기만 하면 4년 단임 이사장직을 수해하는 이른바 민주적 방식이 과연 바람직하고 성과적인 것인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명예에만 집착하는 제도가 아닌지 검토해봐야 한다.

시들어가는 시문학을 일으켜 인문학의 중추로 바로 세워야 할 시기다.    

들여다보면, 시를 쓴답시고 어울려 다니던 청소년 시절엔 감동을 주는 읽을 만한 시도 많았던 것 같았고, 그런 명시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때 열린 문화제 백일장 행사는 문학 청소년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나름 과거시험 같은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문학으로 세상을 구하려는 듯 백일장 장원에 뽑힌 젊은이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한글날이면 전국 학교와 고을마다 열리다시피 했던 백일장을 이제 구경하기 쉽지 않다.

학교에서 문예반 또는 문학 동아리 찾기도 어렵기 마찬가지다. 진학·취업에 내몰리는 학생들에게 문학을 꿈꿀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문단에서 참여·순수 논쟁과 같은 진지함과 치열함이 있었던 시기에는 문학이 독자와 세인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관객은 사라지고 시인 혼자서 또는 아는 사람 몇 명이 어울려서 외롭게 시를 읊조리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들끼리 쓰고, 그들끼리 읽고, 그들끼리 치켜세우고, 그들끼리 상을 주고받고 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관중도 없는 운동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꼴이다. 그들 아닌 사람들이 보기엔 웃기는 판토마임으로 보일 뿐인데.

문자들을 어지럽게 뒤섞어 놓은 시, 기호 해독하듯 돋보기 들고 한참 들여다봐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간신히 알아내는 시, 알아내 봤자 아무 감흥이 없는 시. 그런 시에 독자들은 더 이상 속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니 시를 읽는 청소년도, 어른도 거의 없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잡지는 늘어난 현상은 기이하다. 언론자유화 이후 각종 매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경영 형편과 방법이 제각각인 것에 비견될만 하다. 이 때문에 옥석 구분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예전 소중했던 문학지 시대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생태계가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등단 문인은 많이 늘었다. 하지만 문학지망생은 젊은이보다 나이 든 사람이 많은 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하다.

세상이 달라졌다. 쓰이지 않고 찾지 않는 것은 사라져 갈 뿐인 시대에, 화면과 인터넷이 극대화하는 가운데 진심을 노래하지 않는 시와 시인은 소용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면과 인터넷 시대에 부합해야 할 부분과 지켜야 할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시와 시인은 활로를 찾아야 한다.

차기 문협 이사장 선거에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일이다.

젊은이들이 유행가 못지않게 아름다운 시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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