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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로 '정치적 영향력' 보여주고 싶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욕망

[리뷰] 예술로 '정치적 영향력' 보여주고 싶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욕망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2.11.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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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사진=임동현 기자)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사진=임동현 기자)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합스부르크. 600년 동안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왕가(王家)다.

30년 전쟁, 스페인-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유럽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에는 모두 이 합스부르크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수집한 예술품들은 유럽의 미술사를 조명하면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지난달 25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예술품 96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된 예술품들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수집한 작품들로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럽의 패권을 잡으며 합스부르크 왕가를 유럽의 중심으로 만든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로 전시는 시작된다. 역시나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쟁이었고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갑옷이었다.

이들에게 갑옷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감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각자의 갑옷마다 특색이 있고 이 특색은 곧 전쟁터에서의 존재감을 암시했다. 오늘날로 치면 운동선수가 어떤 특정 브랜드의 운동복을 입고 경기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갑옷이 패션'이었던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갑옷. (사진=임동현 기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갑옷. (사진=임동현 기자)

진기한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예술의 방'을 통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안목을 보여줬던 루돌프 2세, 암브라스 성에 자신의 전용 건물을 짓고 전시품 배치까지 직접 결정했던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이 수집했던 공예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이제 매혹적인 회화들을 만날 차례다.

이번 전시 포스터를 장식한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안토니 반다이크의 초상화 <야코모 데 카시오핀>, 얀 스테인의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등이 그들이다.

특히 한쪽에는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보면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나그네의 행색을 한 이들이 신인 줄 모르고 그들을 대접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 루벤스라는 이름과 바흐의 곡이 어우러지자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된 기분이 들었다. 

루벤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사진=임동현 기자)
루벤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사진=임동현 기자)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죽고 마을에서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기대했던 미술 콩쿨에서도 탈락한 채 자신이 기르는 개이자 친구인 파트라슈와 눈으로 덮힌 추운 거리로 쫓겨난 네로는 마지막으로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루벤스의 성화를 보고 결국 파트라슈와 함께 얼어죽고 만다. 

전시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쌩뚱맞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네로가 죽기 직전까지 보고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과 나그네를 대접하려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그리고 바흐의 곡이 어우러지면서 느낀 생각이다.

황족들이 '수집'이라는 이름으로 예술품을 '소유'하던 시절에도 그 예술품을 보고 싶어하던 평민들은 분명 존재했다. 우리는 눈으로 화려함을 보지만 그 뒤에 숨겨졌던 비참함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이야기가 빗나갔다.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회화들을 거쳐 우리는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19세기 프란츠 요제프 1세 시대와 마주하게 된다.

프랑스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화려한 약혼 축하연 등을 보게 되면 이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를 접하게 된다. 그렇다. 바로 뮤지컬 <엘리자벳>의 실제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 (임동현 기자)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 (임동현 기자)

수백년을 이어온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풍에 답답함을 느꼈던 엘리자베트 황후. 황제는 그를 사랑했지만 사랑은 그의 속박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엘리자베트 황후는 자유를 택하지만 무정부주의자가 그의 가슴을 찌르면서 생이 마감됐다.

화려함의 뒤에는 비참함이 있고 화려함의 속에는 비극이 있다. 그리고 이 왕가의 비극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는 '사라예보 사건'으로 이어진다. 

전시의 마지막. 조선의 갑옷과 투구가 나온다. 바로 130년 전인 1892년, 대한제국과 오스트리아가 수교를 하면서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것이다.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서로 손을 잡으며 친구가 된 것을 기념하면서 전시 구경은 끝이 난다.

고종이 전달한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 (사진=임동현 기자)
고종이 전달한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 (사진=임동현 기자)

'유럽 최고의 가문'으로 불리는 합스부르크가 선보이는 화려한 예술품들은 살아있는 서양미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중간 바흐를 비롯해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곡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전시의 큰 매력이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예술품 수집은 하나의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예술과 정치를 과연 분리해서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예술의 발전도 따지고 보면 영향력을 보여주고픈 개개인의 욕망이 포함되어 있고 이런 발전이 합스부르크가 600년간 유럽의 중심으로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보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재미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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