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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람들] "생신상에 울고 웃는 어르신들 위해 멈출 수가 없어요"

[우리동네 사람들] "생신상에 울고 웃는 어르신들 위해 멈출 수가 없어요"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3.01.24 19:31
  • 수정 2023.02.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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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어르신 생신상 챙기며 봉사하는 서울 돈암2동 '반디 자원봉사단'

반디 자원봉사단의 조용예 회장(왼쪽)과 박정인 회원. ⓒ임동현 기자
반디 자원봉사단의 조용예 회장(왼쪽)과 박정인 회원. ⓒ임동현 기자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새벽 4시,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된다. 소고기미역국과 돼지불고기, 시금치무침, 물미역야채무침이 만들어진다. 

이들이 음식을 들고 향하는 곳은 바로 생일을 맞은 독거 어르신의 집. 준비된 음식과 케이크를 들고 어르신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순간, 어르신들은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같이 울고 웃는 그 순간, 어르신은 물론 음식을 준비한 이들에게도 행복한 시간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2동의 '반디 자원봉사단'은 이처럼 어르신들의 생일 잔치를 매달 치르고 있는 봉사단체다. 반찬봉사와 함께 시작된 이들의 봉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12년 반디 자원봉사단을 만들고 지금까지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조용예 회장과 회원들은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봉사에 나서고 있다.

"매월 둘째주 목요일에 생일상 봉사 활동을 하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생신상을 준비해요. 고마워서 우시면 저희도 같이 울고 웃으시면 저희도 같이 웃죠. 어떤 분은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저희 손을 붙잡기도 해요. 어르신들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계속 하는 거죠."

생일상을 받은 한 어르신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통곡을 했다고 한다. 자식과도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아가야했던 어르신이었기에 더욱 그 생일상이 따뜻했을 것이다. 봉사단도 그 어르신의 손을 붙잡고 같이 울었다.

그렇게 연락도 주고 받고 했던 어르신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술을 많이 드셔서 몸이 상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말을 전하던 조용예 회장은 어느새 눈시울을 붉혔다.

같이 있던 박정인 회원은 국가유공자였던 한 어르신의 기억을 이야기해줬다. "저희가 상을 차려드리니까 할아버지께서 답례를 하시겠다면서 노래도 부르시고 배운 거라고 손바닥으로 직접 장단을 맞추시더라고요. 한참 자랑하시는 것 보고 저희도 유쾌했거든요."

어느새 앞서 말한 할아버지 생각에 눈믈을 흘리던 조 회장도 '맞아, 맞아'하면서 미소를 보인다. 그렇게 봉사단을 울고 웃겼던 어르신들의 기억이다.

반디 자원봉사단. ⓒ성북구
반디 자원봉사단. ⓒ성북구

반찬봉사는 봉사단이 생기기 전인 2009년부터 시작이 됐다. 조 회장이 일하던 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반찬 봉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센터를 출입하는 어르신들만 대상으로 하다보니 옆집에서 '나는 왜 안해주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일상 차리기까지 이어지게 됐다.

어르신들을 위해 신선한 재료를 시장에서 고르고 계절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조용예 회장의 일이다.

"독거 어르신들 중에는 자녀가 없으신 분도 계시고 자녀가 계셔도 사는 게 어렵고 하시다보니 자녀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분들도 계세요. 생신인데 케익만 달랑 드리기보다는 따뜻한 미역국이라도 드리려 했던 거죠. 봉사를 다니니 고맙다는 말씀에 보람을 느낍니다."

동네주민 10명으로 구성된 반디 자원봉사단은 생일상 차리기와 더불어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함께 놀자는 취지의 '롤마니또' 활동, 학생들이 어르신들에게 제철 과일 등을 전하는 간식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봉사 점수 때문에 온 학생들과 부모들이 있지만 봉사에 재미를 느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게 봉사단의 이야기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어르신들의 생신상이 조 회장의 자비로 마련된다는 것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른 상황임에도 조 회장은 자비로 봉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모자란 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충당한다는 것이 조 회장의 이야기다.

다행히 생일 케이크는 교회 목사님의 후원으로, 고깔모자와 선물로 주는 양말, 반찬통 등은 캠프비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한다. 

반디 자원봉사단이 차린 생일상. ⓒ성북구
반디 자원봉사단이 차린 생일상. ⓒ성북구

"회비를 매달 받고 있기는 하지만 회비를 쓰게 되면 결국 회원들간의 분란이 일어나게 되요. 회비로 부담을 주는 것보다는 제가 해온 일을 게속 하는 게 맞죠. 남은 회비는 회원들에게 떡 등으로 돌려주기도 합니다."

"후원을 받기도 하지만 후원을 한답시고 직접 봉사를 하지 않고 봉사점수를 요구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생색내기 후원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돈만큼은 엄격하게 운영하려고 해요. 회원분들도 지금처럼 유지되어도 충분합니다.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봉사에 신경쓰기보다 남은 것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회원 수가 많은 게 의미가 없어요. 뜻없는 후원, 일하지 않는 회원 없이 하려합니다."

봉사의 이유, 조 회장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더불어 살아야하는 세상이잖아요. 협동이 필요해요. 어려운 분들은 솔직히 10원도 아쉬울 때가 많아요. 우리가 그런 분들을 도와주는거죠. 이런 말씀 드려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 분들은 다 봉사 교육을 받고 봉사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것 없이 일을 하려하니 주민들의 어려움을 잘 모르거든요. 내가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가가 많이 올라 힘들기는 하지만 제가 일을 하면서 충당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돈에 연연하지 않고 하려합니다."

의미없는 후원, 이름만 내건 봉사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고픈 마음이 있기에 반디 자원봉사단의 행보는 앞으로도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적어도 생신날만큼은 동네의 독거 어르신들은 혼자가 아닌, '또 다른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따뜻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 기쁨이 필자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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