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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진의 이상한 여행] 우여곡절 끝에 사찰로 거듭난 길상사,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남유진의 이상한 여행] 우여곡절 끝에 사찰로 거듭난 길상사,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 기자명 남유진 기자
  • 입력 2021.02.24 16:25
  • 수정 2021.03.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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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이 길상사로 변화
기생 김영한과 시인 백석의 사랑이 깃든 곳

길상사 입구/사진=남유진 기자
길상사 입구/사진=남유진 기자

[뉴스더원=남유진 기자]  몇 해 전 지인들과 함께 가을 녘에 찾았던 길상사에 대한 기억이 좋아 언젠가 다른 계절에 한 번 더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무렵, ‘남유진의 이상한 여행’ 3호선 편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곳을 소개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길상사는 3호선 편에서 소개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곳이지만, 불편한 교통편을 감안하고서라도 한 번쯤 가보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곳이기에 소개한다. 

길상사는 삼각산 중턱에 위치한 절로 도보로 갈 시 등산을 각오해야 할 만큼 오르는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을버스 2번과 3번이 짧은 배차 간격으로 운행을 하니 기자는 저질(?) 체력을 고려해 마을버스에 오른다. 마을버스 창밖으로 보는 성북동 부자 마을은 높은 담장 속에 으리으리한 대궐을 숨겨 놓고 있어 꼭 수수께끼를 내는 것만 같다. 

길상사는 여느 사찰과 다르게 사천왕문도, 단청도 없다. 원래 우리나라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이었으며, 대원각의 주인인 김영한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받아 대원각을 시주하며 비로소 아름다운 사찰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찰이라기보단 트렌디한 문화공간처럼 느껴진다. 

입구에서부터 부처님께 자신의 소원을 적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기자도 종교 막론하고 흰 종이에 소망을 꾹꾹 눌러 썼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사찰이지만 산 중턱에 있어 공기가 참 맑고 깨끗하다. 맑은 공기가 몸속에 가득 차니 기분도 차차 정화된다. 도시 생활을 할 땐 기자도 모르게 잰걸음으로 뛰어다니다시피 했지만, 이곳에선 느리게 느리게 걷는 나를 발견한다. 가끔 나뭇가지에 걸어둔 풍경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더없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길상사 극락전/사진=남유진 기자
길상사 극락전/사진=남유진 기자

길상사 하면 김영한과 시인 백석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기생이었던 김영한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갖춘 백석은 ‘문학’을 매개로 만나 순식간에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백석의 집안은 기생과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어 그 둘을 갈라놓으려 했다. 백석은 그녀에게 만주로 떠나자고 했으나 그녀는 그의 앞길을 막는 일 같아 거절하고 백석 혼자 만주로 떠났고 그 뒤 3·8선이 두 사람을 평생 갈라놓고 만다. 둘은 평생을 서로 그리워했으며 그 그리움의 흔적은 그들의 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영한은 시가 천억 원 하는 대원각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회고한다. 시대의 금기된 사랑,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절개 등 이 둘의 아름다운 사연이 한 편의 ‘시’에 다름없다고 느껴졌다. 

잠시 나무 의자 위에 앉아 햇빛을 정면으로 맞으며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다. 귀에는 풍경과 참새 소리가 이따금 들린다. 해가 이동하며 만든 그림자를 피해 앉아 있다가 잠이 솔솔 들려는 찰나 지나가는 이의 발소리에 깜짝 놀라 깨고 만다. 

다시 길상사를 한 바퀴 돌고 법정 스님의 거처였던 진영각으로 향했다. 법정 스님의 유품, 유언장이 있고 직접 쓴 책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무엇보다 그의 청빈한 삶을 한눈에 보여주는 옷 한 벌이 유독 눈에 띈다. 여기저기 닳고 닳아 누더기 같지만 어떤 부자가 입은 옷보다도 더 빛이 나고 가치가 있다.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려준 그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오늘 하루 많은 것을 하지 않았지만, 어제보다 더 풍성한 하루였음을 고백하며 다른 계절의 길상사를 만나러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지는 해를 등지고 한참을 서성이다가 겨우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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