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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직업人] 동물박제사 윤지나 “박제할 때 ‘죽음’이 아닌 ‘생명’을 보며 작업하죠”

[이색직업人] 동물박제사 윤지나 “박제할 때 ‘죽음’이 아닌 ‘생명’을 보며 작업하죠”

  • 기자명 남유진 기자
  • 입력 2021.03.03 14:44
  • 수정 2021.03.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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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제사국가자격증 보유자 50명...현업은 20명 남짓

동물박제사 윤지나 씨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제공=서울대공원
동물박제사 윤지나 씨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제공=서울대공원

[뉴스더원=남유진 기자]  서울동물원에서 동물박제사로 일하는 윤지나 씨는 동물이 폐사하면 부검현장에 가서 사체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표본제작 여부를 결정한 후 작업에 돌입한다. 호랑이처럼 큰 동물의 경우 완성하기까지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그는 이 인고의 시간동안 동물이 가진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박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 서울대공원에서 박제사로 일하고 있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 
서울대공원에서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 ‘박제 표본’과 동물의 뼈만 발골해 보존하는 ‘골격 표본’을 작업하고 있다. 동물이 폐사하면 부검 현장에 가서 사체의 상태를 확인하고 제작 여부를 결정한 다음, 표본 제작을 시작한다. 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우선으로 작업하며 교육에 도움 되겠다 싶은 동물들은 표본으로 제작해 교육 자료로 준비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관리하는 일도 한다. 수장고에서 적절한 온‧습도에 보관될 수 있도록 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훈증, 소독한다. 또한 표본을 새롭게 설치하기도 하고 보수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다른 공공기관에서 표본 대여 요청이 들어오면 적절한 행정절차를 거쳐 일정 기간 대여해 드리기도 한다. 

‘동물 박제사’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해당 직업에 관해 소개 부탁드린다. 
우리나라에 박제사국가자격증 보유자는 50명 이상 된다. 현업에서 박제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20명 남짓이며, 그중 자연사박물관 등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 박제사는 5명 정도로 알고 있다. 동물원 내부에 박제사가 근무하는 곳은 서울대공원이 유일하다.
박제사는 동물의 가죽을 보존해 그 동물이 살아있을 때처럼 다시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박제’란 말을 듣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텐데 서울대공원에서는 자연사한 멸종위기종을 표본으로 제작해 후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인 의미가 크다. 이로써 동물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물자원으로써의 새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후대를 위한 자연교육, 어른들의 평생교육, 그리고 국가자연유산의 보전과 연구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이다. 먼 훗날 어떤 동물이 멸종해 더 이상 그 동물을 볼 수 없을 때, 그 동물의 표본이 남아있으면 그 가치는 상당히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물 박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되나.
간단히 말하면 가죽을 벗겨 동물 모양의 마네킹 위에 가죽을 씌우고 봉합해 건조하는 것이다. 동물이 죽으면 냉동 보관을 해놓았다가 제작하기 전 해동을 한다. 일반적으로 복부를 절개해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제거하고 적절한 화학약품 처리 후 마네킹에 씌운다. 특히 마네킹은 해부학적으로 살아있던 개체의 사이즈에 맞게 제작돼야 한다. 다음으로 눈, 코, 잎, 귀, 발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하고 봉합을 한다. 그 후 몇 주 동안 건조하면 가죽이 머금고 있던 수분기가 완전히 날아가며 색이 바래는데 그때 색칠을 다시 해줘야 한다.

윤 씨가 작업한 시베리아 호랑이/제공=서울대공원
윤 씨가 작업한 시베리아 호랑이/제공=서울대공원

보통 작업 기간은 얼마 정도 걸리나.
표본 한 점을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동물 사이즈에 비례한다. 호랑이처럼 대형 동물일 경우 한 마리당 반년 정도 소요되고 수달이나 늑대 같은 중‧소형 동물의 경우 3, 4개월 소요된다. 작은 새라든지 쥐 같은 경우에는 한 달 안팎으로 소요된다. 

박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
우리나라에는 문화재청에서 발급되는 박제사 자격증이 있다. 정식 명칭은 문화재수리기능자자격증(박제 및 표본 제작공)이다. 시험이 매년 한 번씩 열리는데, 합격자는 1년에 1, 2명 정도로 이 자격증이 있으면 천연기념물을 표본 제작할 수 있다. 그래서 공공기관(자연사박물관, 동물원 등)에서 박제사를 채용할 때 이 자격증을 필수 지원 자격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박제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전무하지만, 박제를 배우게 된다면 보통 도제식으로 배우게 된다. 난 국립생물자원관 류영남 선생님 밑에서 일하며 배웠다. 한낱 대학생에 불과했던 날 제자로 받아주셔서 박제도 배우고 취직도 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류영남 선생님은 우리나라 1호 공무원 박제사이자 조류 박제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포유류 박제는 세계대회 챔피언 박제사 켄 워커 님께 많이 배웠다. 그는 SNS를 통해 알게 됐는데 그분이 계신 캐나다에서 함께 작업하며 가르침을 받았다. 요새도 궁금한 게 있으면 메신저로 물어보고 사진을 올리며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난 박제를 하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천운이 따랐던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나.
한국에 온 뒤 동물원에서 여느 날처럼 근무하고 있는데 늑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검실에 갔더니 털빛이 아름다운 수컷 늑대가 있었다. 늑대는 여름에 털갈이를 하는데 당시 겨울이라 털이 더욱 아름다웠던 것 같다. 작업 후 박제된 늑대를 잔디밭에 올려놓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어떤 관람객이 ‘강아지가 왜 안 움직이냐,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동세가 자연스러웠다. 나중에 동물원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보니 이 늑대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북한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서울동물원으로 보내진 개체였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기까지 그리고 서울동물원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지, 사육사들과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을지 궁금해지며 문득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일하다 생긴 직업병도 있나.
우리집 고양이나 친구네 개를 쓰다듬을 때 여기저기 관찰하고 꾹꾹 눌러 뼈의 위치나 근육 구조를 느끼곤 한다. 퇴근하면 집에 가서 고양이 귀, 다리 관절이나 근육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만져보고 ‘아! 내일 출근하면 호랑이의 이 부분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집에서 쉴 때 동물 사진 보는 게 취미다. 인터넷에서 본 동물사진 중 참고사진으로 쓸 만하다 싶은 것은 다 저장해 ‘동물사진 저장 중독’이 된 것 같다.

박제의 매력은 무엇인가. 
박제는 여러 가지 기술의 종합선물세트 같다. 칼도 다뤄야 하고, 가죽 가공, 목공, 용접, 바느질, 색칠, 조각, 캐스팅하기 등 다양한 종류의 작업이 수반된다. 그리고 박제에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생물종이나 박제사가 선택한 자세에 따라 재료, 박제 방법 등이 달라진다. 바꿔 말하면 박제사 스스로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렵지만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박제는 무지개를 쫓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무지개는 아무리 쫓아가도 절대 잡을 수 없듯 동물을 박제할 때마다 최대한 자연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려고 하지만 죽기 전까지 결코 완벽한 박제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동물 박제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평소에 동물을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동물의 행동, 생태, 근골격계 해부학 등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 박제를 할 때 기본적으로 해부학적 정확성이 바탕이 돼야 하고 동물의 습성과 생태를 잘 알고 있어야 정확한 박제를 할 수 있다. 터무니없이 생태에 맞지 않는 포즈를 하거나 틀린 서식지를 연출하면 안 된다. 그리고 손재주를 기르고 눈썰미를 키우기 위해 평소 점토로 동물 모양을 조그맣게 만들거나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하면 좋다. 박제에 대한 정보는 외국에 더 많음으로 영어 공부를 한 다음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연구해야 한다. 코로나 터진 이후로 해외 박제사들이 온라인 강좌를 많이 개설하고 있는 추세라 온라인상으로 박제를 배우는 것도 가능하다. 

‘동물 박제사는 ○○○이다!’ 괄호 안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면 좋겠는가. 
지나간 동물의 과거를 기억하고,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박제를 ‘죽음’과 연관을 짓는데, 박제사들은 박제할 때 죽음을 보지 않고 ‘생명’을 보며 박제를 한다. 박제하기 전에 동물 사체를 볼 때마다 그 동물이 가진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 아름다움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게 박제사다. 

올해 본인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가. 
올해 9월 큰 박제대회가 헝가리에서 열리는데 거기서 초청 강연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올 한해는 세미나 준비와 대회 출품작 준비로 바쁠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박제 챔피언십, 세미나, 박람회 등을 돌아다니며 영국, 미국, 독일 등 박제사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과 문화는 다르지만, 공통 관심사인 박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앞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외국 박제사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들의 작업실도 가보고 박제 제작방법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고 세계대회에 출전해 상을 타는 것이 내 꿈이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세계 곳곳의 국립공원을 여행하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으러 떠나고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토종동물(고라니, 호랑이, 담비, 오소리, 삵, 너구리, 멧돼지, 수달 등)을 마네킹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 추후에 우리나라 박제사들이 내가 만든 마네킹을 활용해 수준 높은 박제를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드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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