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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기사] 남과 북을 가른 그 선 아래에서 북쪽을 바라봤다

[기행 기사] 남과 북을 가른 그 선 아래에서 북쪽을 바라봤다

  • 기자명 남유진 기자
  • 입력 2021.04.16 15:58
  • 수정 2021.04.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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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 평화곤돌라, 놀이공원 등이 있는 관광지

임진강/사진=남유진 기자
임진강/사진=남유진 기자

[뉴스더원=남유진 기자]  나는 딸기가 한창 싱그럽게 익는 4월의 봄에 태어났다. 엄마는 늘 내게 ‘참 좋은 계절에 태어났다’며 이맘때쯤 들녘에 나는 자연의 산물들을 먹이고 싶어 했다. 봄에 처음 나는 햇부추는 부드럽고 쓴맛 없이 고소하며 춘곤증도 거뜬히 이길 수 있다 했다. 객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딸이 혹시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외로운 날을 보낼까 싶어 시골에서부터 싱싱한 부추를 들고 아빠와 함께 상경했다. 여기까진 눈물겹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빠는 오랜만에 가는 서울 여행에 한껏 들떠 동네방네 ‘서울에 간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통 못 봤던 아빠의 사촌동생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앞서 외삼촌과 외숙모는 내가 먼저 초대했기에 일이 점점 커짐을 직감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청소하고 마트에 가 부랴부랴 장을 봐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밤이 늦어서야 친척들은 다 돌아갔다. 주객이 전도돼도 많이 전도된 것 같은….

그리고 다음 날은 아빠의 소원에 따라 임진각으로 향했다. 다행히 집 근처 합정역에서 7300번을 타면 임진각까지 한번에 갔기에 교통편은 무리가 없었고 게다가 2층 버스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2층 맨 앞자리에 앉으니 커다란 통유리가 꼭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처럼 느껴졌다. 북쪽으로 올라가니 아직 꽃이 다 지지 않아 본의 아니게 꽃구경도 나무와 키를 맞춘 상태에서 제대로 할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릴 땐 단돈 2800원으로 4D 영화 한 편 제대로 보고 나온 것만 같았다. 

아빠는 2층 버스의 감격을 억누를 수 없는지 동네 사람들에게 전화해 “시골 사람들은 2층 버스 안 타봤으면 말을 하질 말어”라고 말해 엄마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언젠가 지역명에 ‘주(州)’가 붙은 곳은 땅이 엄청 넓은 곳이라 들었다. 그래서인지 파주(坡州)도 버스로 한참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임진각에 도착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군사분계선에서 7km 남쪽으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임진각은 6‧25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다양한 전쟁유물이 산재해 있으며, 전시관은 물론 3만 평 규모의 평화누리공원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임진각 일원은 6‧25 전쟁 중에는 참담한 전쟁터였다. 전쟁 초기에 폭파돼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임진강 철교, 공산군의 포로였던 국군과 유엔군이 자유를 찾아 건너왔던 ‘자유의 다리’가 있다. 북한 실향민을 위한 임진각이 세워지며 관광지로 지정됐는데, 현재는 평화누리, 임진각 평화곤돌라, 6‧25 전쟁납북자기념관, 놀이공원 등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며 대규모 관광지가 됐다. 

아빠는 북쪽에 두고 온 가족도 없는데 늘 ‘망향의 정’을 그리워하며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그 아픔을 달래곤 했다. 북쪽에 더 다가갈수록 아빠는 혼잣말로 ‘슬프다’란 말을 되뇄고 그 눈을 보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어 엄마는 옆에서 쿡쿡대고 웃었다. 

4월의 임진각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바람도 좋고, 햇볕도 좋아 산으로, 들로 떠나기 좋은 요즘이다. 

‘임진각 평화곤돌라’를 타고 민통선을 바라본 모습/사진=남유진 기자
‘임진각 평화곤돌라’를 타고 민통선을 바라본 모습/사진=남유진 기자

임진각에서 효도관광으로 가장 좋은 시설은 단언컨대 ‘평화곤돌라’다. 임진강을 하늘 위로 건너며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어찌 안 좋을 수가…. 이는 국내 최초로 민통선 구간을 연결했으며 임진강을 가로질러 상부 정류장에 하차하면 제1전망대와 제2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장단반도, 북한산, 경의중앙선, 자유의다리, 독개다리, 임진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2전망대에는 도보다리, 평화정, 임진강 평화등대가 있다. 

곤돌라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철조망에 붙은 ‘지뢰’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이를 보며 아직 우리나라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임을 깨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외국인들도 꽤 많이 와서 사진 찍고 관광을 기념하는데 한 나라의 아픔이 지금은 관광상품이 됐다니 참 모순이다. 

임진각 평화등대는 크진 않고 정말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이는 4‧27 남북공동성명,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군사 분야 합의를 통한 DMZ와 민통선 지역을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한 약속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잊지 않고 이 앞에서 부모님 사진도 여러 장 찍는다. 

평화누리공원/사진=남유진 기자
평화누리공원/사진=남유진 기자

다시 곤돌라를 타고 평화누리공원으로 건너온다. 넓디넓은 잔디밭에 아이들이 지치는 줄 모르고 맘껏 뛰어논다. 하늘을 덮은 연의 물결도 이색적이다. 요샌 연의 디자인도 다양해져서 뭐가 새고 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여행에선 사람 구경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더 새로운 에너지를 받게 된다. 

임진각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남은 일정이 있어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2층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용산역에 도착해 간발의 차이로 기차에 탑승했고 부모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난 깨달았다. 

‘아 맞아! 나 오늘 생일이었지. 난 오늘 아빠 환갑잔치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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