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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의 세상이야기] 실패로 끝난 朴正熙 대통령 ‘언론규제법’

[변평섭의 세상이야기] 실패로 끝난 朴正熙 대통령 ‘언론규제법’

  • 기자명 변평섭 논설고문
  • 입력 202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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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뉴스더원=변평섭 논설고문] 온천 휴양지 유성에 ‘만년장’이라는 호텔이 있었다. 이 호텔이 유명한 것은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나들이 때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호텔 측은 아예 대통령 전용 침실까지 마련할 정도였다.

1964년 9월 8일에도 박 대통령은 지방 순시를 마치고 만년장에 몸을 풀었다. 그런데 전에는 으레 도지사, 시장 등 지역 기관장들과 만찬을 가졌는데 이날은 전혀 낯선 인사들이 대통령을 맞았다. 동양통신 사주이며 공화당 재경위원장인 김성곤 씨를 비롯 언론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었다.

정국을 뜨겁게 달구던 정부의 ‘언론규제 입법’ 강행에 대한 언론계 대표들과 대통령의 대화가 이곳 유성 만년장 호텔에서 이루어진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공화당은 ‘언론윤리위원회’라는 이름의 언론규제법을 만들어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었다. 언론계와 야당의 반대에도 1964년 8월 2일 야간 국회를 열어 단독 강행, 통과시켰고 국무회의는 이 법을 즉시 공포해버렸다. 이에 맞서 언론 단체가 조직되어 정부에 저항했으며 오늘날 8,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한국기자협회’도 이것을 계기로 탄생했다.

정부 또한 강경하게 맞섰다. 소위 야당지라고 하는 신문의 정부 기관 구독을 금지시켰고, 정부의 광고 배정을 못 하게 하는가 하면 은행의 대출까지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인의 구속도 잇따랐다.

그러자 대정부투쟁에 함께 했던 일부 언론사가 정부에 굴복, 투쟁대열에서 빠져나가는 사태가 일어났다. 언론계도 정부의 강경 조치에 분열하기 시작한 것.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서 열린 대통령과 언론계 대표와의 대화는 그야말로 비상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취재진들이 몰려들어 유성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한·일 회담 반대 등 언론이 보인 정부 비판에 쌓인 감정을 털어놓았고, 언론계 대표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자유를 설파하는 등 분위기가 긴장된 가운데 서로 솔직한 대화가 이어졌다.

마침내 다음날, 그러니까 9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은 언론규제를 위한 언론윤리위원회 설치법 시행을 보류한다는 결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언론규제’의 태풍은 이렇게 대화를 통해 막을 내렸다. 비록 몇몇 언론인이 구속되고 함께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대열에서 변절한 언론인도 있었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 결국 민주주의가 억압받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국민적 공감대가 마침내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하여금 결단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언론자유를 위한 역사적 투쟁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57년이 흘러간 지금 다시 그와 같은 언론 파동의 조짐이 유령처럼 등장하고 있다.

‘언론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단독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57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도 언론 관련 단체들이 이 법의 ‘독소조항’을 들어 반대하고 야당 또한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 피해액을 최대 5배까지 배상해야 하는 외국에서도 볼 수 없는 조항을 만들었다든지, 허위, 조작 보도의 기준이 애매하여 국민이 알 권리를 침해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회 본회의의 통과가 남았지만 험난한 여·야 격돌이 예상되는 만큼 당초 시도했던 ‘가짜뉴스’의 차단을 위해 57년 전처럼 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했다. ‘권력을 잡게 되면 도덕적 우월성까지도 가졌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모두가 곱씹어봐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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