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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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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1004년 요나라 왕 성종(聖宗)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송나라 수도 방어의 요충지인 전주(澶州) 북성(北城)을 포위하였다. 다급해진 송나라는 전쟁을 피하려는 관료들이 나서서 세 가지 조항에 합의한다.

첫째, 두 나라는 형제로 하고 둘째, 송은 해마다 은 10만 냥과 명주 20만 필을 요에 보내며 셋째,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전연의 맹약(澶淵之盟)'으로 불리는 조약을 맺고 송나라는 위기를 모면했다.

저잣거리에서는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조정은 ‘보잘것없는 북방 오랑캐에게 약간의 경비를 원조해주는 너그러운 대국의 면모를 보이며 오랑캐에게 대승을 거두었다.’라고 선전하며 비난을 일축했다.

40년 후, 1044년에 이번에는 서하(西夏)가 쳐들어오자 송나라는 ‘경력의 화약(慶暦和約)’이라 불리는 화친을 맺고 전쟁을 피했다. 매년 은(銀) 7만2천 냥, 비단 15만3,000필, 차 5만 근을 서하에게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이번에도 송나라는 외교적 대승을 거두었다고 선전했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로서의 황제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되었지만, 돈으로 얻은 평화는 황제의 자리를 보장해주었다. 이때부터 송나라 내부에서는 외부의 위협에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오랑캐가 무력으로 위협하더라도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매년 들어가는 거액의 비용도 문제였지만, 정작 국경 너머에는 침략에 대한 불안 요소가 해결되지 않은 채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화친을 맺은 후, 송나라는 군사력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왕안석(王安石)이 내세운 군제 개혁안도 당쟁에 휘말려 좌절되었다.

다시 80여 년 후인 1123년, 이번에는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가 쳐들어왔다. 송나라는 또 전쟁을 피한다는 명분으로 교섭에 나섰다. 그 결과 요나라에 지급하던 공물을 금나라에 돌리고도 국토의 상당 부분을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마침내 3년 뒤, 1126년 금나라가 약속을 어기고 수도를 침공해오자 황제의 주변에는 ‘땅을 더 내주고 화친을 청하자.'라고 주장하는 자들만 남아있었다. 이듬해 초, 황제는 포로가 되었고 북송은 멸망하고 말았다. 역사에서는 이를 ‘정강의 변(靖康之辱變)’으로 기록하였다.

군사력 대신 문치(文治)를 앞세워 태평성대를 누리던 송나라의 멸망은 무능한 황제와 부패한 관료 때문이었다. 바로 지나치게 많은 관리와 병사들의 급여 등으로 인한 재정 위기, 개혁의 실패와 권력의 남용, 외교정책 실패가 가져온 결과였다. 구걸로 얻은 평화와 풍요로움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훈이다.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협하면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1938년 9월 29일 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히틀러, 무솔리니가 뮌헨에서 모였다. 이들은 밀실 야합을 통해 체코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평화에 합의하였다.

“나는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믿습니다(I believe it is peace for our time).” 뮌헨 회담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온 체임벌린이 공항에서 이렇게 선언했지만, 1년 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독재자를 상대로 평화를 구걸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야심에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이유로, 오늘날 외교 역사상 최악의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유화정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에게 유화정책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보여준 사례였다.

남북의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민족의 항구적인 평화를 약속하는 장면을 연출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정부는 ‘항구적인 평화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비무장지대의 방어진지(GP)까지 파괴하는 쇼를 벌였다. 전쟁 위험을 고조시킨다는 등 갖가지 구실을 들어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훈련에 소극적이었다.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는데도, ‘도발’을 ‘도발’이라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저잣거리 여론은 ‘평화를 구걸하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서 이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이는 까닭이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탈레반이 장악해버린 아프간 사태, 미국과 러시아의 설득으로 핵무기를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속수무책으로 침공받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유화정책은 도저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에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역사 속에서 잘못된 판단과 미봉책으로 평화를 구걸하다가 위기를 자초했던 나라들의 사례를 곰곰이 되짚어보아야 한다.

국민은 정부에게 묻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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