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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통 큰 정치를 바라며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통 큰 정치를 바라며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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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후한(後漢) 말 여남(汝南 : 지금의 호북성)에 사람들의 관상을 잘 보기로 소문이 자자한 허소(許劭)와 허정(許靖)이라는 사촌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매달 초하루(月旦)가 되면 고을 사람들의 인물을 평했는데, 그 인물평이 매우 적절하여 사람들 사이에 평판이 높았다.

거기에다 매달 인물에 대한 평을 달리하여 발표했기 때문에 여남 지방에서는 '월단평(月旦評)'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조조가 찾아와 자신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했다. 허소는 그를 보자마자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평을 거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할 수 없이 “그대는 태평스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도적이 될 것이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영웅이 될 것이오.”라고 평을 해주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는 “그대는 잘 다스려진 세상에서는 능력 있는 신하가 될 것이요,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조조는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에 크게 만족하고 돌아갔다. 『십팔사략』과 『후한서』 「허소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요즈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신문이나 방송 등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서 인물평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세평에 오르는 인물을 두고 어떤 매체에서는 그의 전문성을 강조하는가 하면, 또 다른 매체는 전문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간의 삶의 궤적에 대해 트집을 잡고 흠집을 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기사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속한 정파나 집단의 이익을 챙기는 내용으로 가득해서 그 의도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언론의 본래 기능인 월단평과 같은 공평무사함은 기대할 수 없다.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도공(悼公)의 신하 기해(祁奚)가 중군위(中軍尉)의 직에 있었다. 그는 나이가 70에 이르자 고령을 이유로 왕에게 사직을 청했다. 왕이 적합한 후임자를 천거해 달라고 하자, 기해는 해호(解狐)라는 인물을 추천하였다.

왕은 깜짝 놀라 물었다. “해호는 당신과 원수지간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 그를 천거하오?” 기해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지금 제 후임으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은 것이지, 제 원수가 누군지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감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교롭게도 해호가 취임하기도 전에 죽자, 왕은 기해에게 적임자를 다시 천거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오(祁午)라는 젊은이를 추천하였다. 왕은 다시 한번 놀라면서, “기오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하며 물었다.

이번에도 기해는 “왕께서는 지금 제 후임으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은 것이지, 저의 아들에 관해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였다. 평소 그의 공평무사함을 알고 있던 왕은 즉시 그의 아들을 임명하였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성어는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공익을 앞세워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처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유(韓愈)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라는 글에서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세상 사람들의 의리와 천박한 인심을 꼬집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선비의 의리는 궁핍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요즘 사람들은 서로 흠모한다고 말하며,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닌다. 오라 하면 달려가고 살랑살랑 억지로 웃음 짓는다. 굽실거리고 낮추며 두 손을 부여잡고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한다. 해를 가리키고 눈물도 흘리면서 죽어도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진짜 그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머리털 같은 자그마한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안면을 바꿔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 함정에 빠져도 손을 내밀어 구해 주지 못할망정 도리어 밀어뜨리고 다시 돌을 던진다. 세상인심이 모두 그러하다. 금수와 오랑캐조차도 차마 하지 않는 일이다.”

한유가 살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의 천박한 의리와 가벼운 인심의 행태는 판에 박은 듯 빼닮았다.

현 정부의 임기 말 알박기 인사는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와 동해안 산불 등으로 긴급하게 편성되어야 할 50조원 추경도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추경을 제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버틴다. 여전히 여론을 무시하는 소통 부재의 모습이다.

차기 정부의 원만한 출발을 도와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옹졸한 자세는 보기조차 민망하다. 오직 국민만 보겠다고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 내각 인선에 ‘통합 키워드’가 반영될지 주목된다.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 민주당 출신을 대거 들였다.

대변인은 “인위적으로 특정 정당에 계셨던 분들을 모셨다기보다 진영과 관계없이 인선한 것”이라며, “추가 인선도 같은 기준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인수위 관계자도 “윤 당선인이 가장 싫어하는 게 네 편 내 편 갈라치기”라며, “그런 것 없이 운동장을 넓게 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라고 말했다.

새 정부 조각에서 보수 저변을 강화하면서도 밖으로는 민주당 출신 인사를 과감히 발탁하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하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봄비를 맞은 대지가 꿈틀대고 있다. 새로운 기운이 가득한 계절에 묵은 짐을 털어내고 우리 다시 마음을 모아 함께 뛸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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