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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웅덩이 속 거북이처럼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웅덩이 속 거북이처럼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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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어느 날 장자(莊子)가 초(楚)나라 땅 복수(濮水)라는 강가에서 낚시질하고 있었다. 초나라 위왕(威王)이 장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大夫)를 보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뜻을 전했다.

장자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웃으면서 대답했다.

“듣자 하니 초나라에는 죽은 지 3천 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神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왕께서 그것을 비단으로 싸서 상자에 넣고 사당에 잘 모셔두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거북이는 죽어서 뼈를 남겨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기를 바랐겠습니까? 아니면 진흙밭이라도 살아서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바랐겠습니까?((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그야 물론 살아서 진흙탕 속이더라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겠지요.”

“그런 줄 아신다면 돌아가시오. 나도 장차 진흙탕 속에서 꼬리라도 끌고 다니려고 하오. (吾將曳尾於塗中)”

권력을 마다하고 자연과 더불어 한평생을 보내겠다는 자연인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고사로서, 후세 사람들에게는 ‘예미도중(曳尾塗中)’이라는 고사성어로 회자 되고 있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에 실려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몇 가지 현상들이 있다. 그 가운데 세상인심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것은 관료사회의 움직임이다.

새 정부마다 항상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과거를 묻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을 쓰겠다면서, 인재 등용의 기준을 내세운다. 그러면 새 정부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고위 관료들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정권이 바뀌던 어느 해인가,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한 고위 관료가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지난 정부에서는 정말 힘들었다고 푸념하며,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노래를 불러 참석자들의 술이 확 깨게 만들었던 일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영혼을 팔아먹은 관료들의 얘기는 지금도 술자리에서 좋은 안줏거리로 오르내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미 벼슬길에 올랐거나 장차 오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장자(莊子)의 이러한 태도를 주문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오늘날의 관료들은 너무 정치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정치판의 움직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요직에 있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바뀌어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그곳은 가시방석만도 못한 자리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일부 고위 관료들은 백성의 공복으로서의 올바른 처신보다는, 소신을 버리고 보신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의(義)로움을 좇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힘에 기대어 현실적인 이(利)를 취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관료사회의 모습은 선거철이 되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권력을 좇다가 십중팔구 패가망신하는 것을 매번 보면서도, 그 진흙탕 속으로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며칠 사이에 도심과 한적한 시골길까지 뒤덮은 관료 출신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홍보 현수막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소동파(蘇東坡)는 ‘사람이 여위면 그래도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가 속된 것에 물들면 치유할 수 없다. (人瘦尙可肥 士俗不可醫)’라고 했다.

세속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중독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외줄 타기에 비유되는 정치라는 무대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거처 주변에 대나무를 심어 그 마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항상 정적들과 대결하면서 불안한 삶을 좇기보다는, 누추하고 불편하더라도 장자나 소동파의 생각처럼 자연에 묻혀 안빈낙도하면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더 낫다. 비록 웅덩이 속 진흙밭이라도 꼬리를 끌고 유유자적 노니는 거북이의 한가로운 즐거움에 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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