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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더원 특별기획] 도시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⑥

[뉴스더원 특별기획] 도시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⑥

  • 기자명 박연규
  • 입력 2022.04.27 10:41
  • 수정 2022.04.2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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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박연규의 시선 : “우리 동네 멧돼지”

경기대 명예교수 박연규
경기대 명예교수 박연규

[뉴스더원=박연규] 아파트 단지에 멧돼지가 내려온 적이 있었다. 이 소식은 퇴근하고 돌아오다 경비실에서 들었다. 아파트 가까이에 산이 있어 단지 내에 토끼 몇 마리가 돌아다닌 일은 있었지만, 멧돼지는 처음이다.

그날 내내 나는 이게 보통 일인가라며, 아마 동네는 난리가 났을 것이고 저녁 9시 뉴스 시간에도 이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며 혼자 들떠 있었다. 저녁에는 멧돼지 흔적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단지 안을 기웃거렸지만, 동네는 여느 때처럼 평온했고, 물론 뉴스에 우리 동네 멧돼지 얘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그날 나는 동네 사람들이 이 일로 여기저기 모여 수군댈 줄 알았고 뉴스도 제일 먼저 이 얘기부터 하리라고 생각했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었다. 이 일로 내가 사는 곳이 순간 공중 분해되는 기분, 분명 한 곳에 살고 있음에도 나의 거주에 현실감을 느낄 한 구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 소식을 거의 접하지 못하고 살 것이다. 그마저도 아주 우연히 뉴스를 통해 전해 들을 수는 있겠지만, 집안에서 듣는 소식은 자기들이 사는 동네와는 관련이 없는 정치 얘기, 주식 얘기 아니면 먼 나라의 전쟁 소식일 것이다.

아파트 안에 갇혀 사는 모양새니 동네 소식을 들을 수도 없고 대화를 나눌 이웃도 없다. 멧돼지 출현에 대해 추가적인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도 들을 수가 없었다. 모든 정보가 티브이를 끄는 순간 사라져 단지 내를 씩씩대며 돌아다녔을 멧돼지를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단절도 이런 단절이 없다. 단절의 원인이 이사를 너무 자주 한 탓이고 그나마 이웃을 만나되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실제로 아파트 문을 잠그고 나오는 순간 세상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단지 안에서조차 낯선 사람들인데 서로가 쉽게 말을 걸 수도 없다. 간섭하지 않는 것이 도시적 삶의 미덕이 되고, 개입하지 않는 것이 도시적 세련이 되었는데 누가 내게 멧돼지 얘기를 신나게 해줄 것인가.

멧돼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했다면 적어도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내가 사는 이 아파트가 동네로 변신해야 한다. 아파트가 동네가 되면 집 주위를 어슬렁대며 걷는 동안 아는 사람들 몇몇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의 호기심에 이리저리 불을 지르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말을 주었을 것이다.

멧돼지가 단지 내를 얼마큼 돌아다녔는지, 어느 라인의 몇 호 아파트 아이가 놀라 울었는지, 또 어느 길로 해서 다시 산으로 돌아갔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줬을 것이다.

오고 가는 대화에 살이 붙어 멧돼지의 생태며 도시 환경 문제도 얘기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기분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태껏 서로가 무관심이 아니면 경계심을 가지면서 대했는데 어느 누가 얘기를 해 주겠으며, 나 자신도 새삼스럽게 말을 걸 용기를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옛날의 자연부락 같은 동네를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도시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동네 사람의 정서가 잠재되어 숨어 있다.

도시는 문명 그 자체이고 사람들은 그런 문명의 이점을 누린다. 그러나 그 즐거움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동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네가 사라지면 동네 사람이 사라지고 도움의 가치도 사라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무도 서로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지 않을뿐더러 서로가 모르는 탓에 인간적인 대접이며 상호 인정도 일찌감치 포기해버린다. 어느 누군들 이런 결핍을 복원하려는 욕망을 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무도 먼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다. 서로가 외부인이 되어 가까이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동네라는 말은 정겨움과 친밀감을 준다. 그것은 단순히 오밀조밀한 집들과 같은 물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노력하면 복사꽃 가득한 동네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마 ‘동네 사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도시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한껏 동네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거기에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 주민의 정체성이라든지 동네 사람 되기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쓴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깊이 있게 알려는 동기도 마련되지 않고, 또 그럴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마 그들은 매일 아침 단지 내의 사람들을 처음 보는 사람 또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일을 지루하게 반복해야 한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이 피곤한 반복을 피하려면 도시적 무관심으로 재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 동네 아파트에도 내가 사는 이곳처럼 멧돼지가 나온다면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멧돼지가 골목을 질주하는 유쾌한 상상을 더 이상 하지 말자. 멧돼지의 출현 자체보다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는 무관심이 우리의 문제이다. 

<경기대 명예교수 박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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