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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땅콩 회항' 박창진 "정의당의 개혁, 민주·국힘보다도 뒤처진다"

[인터뷰] '땅콩 회항' 박창진 "정의당의 개혁, 민주·국힘보다도 뒤처진다"

  • 기자명 채승혁 기자
  • 입력 2022.05.02 19:04
  • 수정 2022.05.0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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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부대표 1년, 원내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소망 더욱 간절해졌어"
"노동절(Mayday)에 '메이데이' 외치는 노동자 여전…정치가 제 역할 못해"
"'노동자 대변' 정의당이 '노동 현안' 부족해 대중 공감 못 받은 점 반성해야"
"尹 정부 시작부터 '공정·상식' 자기부정하는 인선…국민들 우매하지 않다"

[뉴스더원=채승혁 기자]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대한항공 항공기는 예정보다 46분 지연된 끝에 출발했다. 이날의 비밀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역에 알려졌고, 이는 '갑(甲)의 횡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전 국민을 들끓게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불리는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이로부터 7년이 지난 2021년 3월, 정의당 보궐선거에서 부대표로 선출됐다.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특권과 불평등에 맞서는 정치, 수많은 '을(乙)'들과 연대하는 진보 정치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라는 박 부대표는 지난 1년간 대한항공의 사무장이 아닌 원내정당의 부대표로서 수많은 '을'들을 만나 그들의 처지에 공감해왔다.

7년 전만 해도 박 부대표 본인이 당사자였던 바로 그 현장의 분위기는 지극히도 익숙했고, 변한 건 크게 없었다. 인터뷰 바로 전날까지도 SPC 파리바게뜨와 동국제강 집회·시위 현장을 다녀왔다던 박창진 부대표는 지난 1년을 회고하며 "원내에 입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또다른 '갑질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그는 기성 정치권들의 무능함을 향해 날을 세웠다.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은 본인이 속해있는 정의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뉴스더원은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를 2일 서울 여의도 앞 한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이하 박 부대표와의 일문일답.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 '땅콩 회항 생존자' 박창진이 '정의당 부대표'가 된지 어연 1년이 됐습니다. 지난 1년은 어떠했나요.

정치의 매운맛을 정말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웃음). 나름대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과연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가'를 고민하는 지점도 많았고, 그 안에는 또 실망감이나 좌절감도 있었죠. 

보통은, 특히 진보 정당의 정치인분들 같은 경우에는 8·90년대 시민운동이든 학생운동이든 진보 활동을 해오시던 분들이잖아요? 연이 다 있는 분들끼리의 연결고리 같은 게 있는데, 저는 정치 신인으로서 어떠한 정파나 조직이 전혀 없는 편이었다 보니 여기서 자립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 지난 1년간 정당인으로서 많은 현장을 누벼오셨는데, 특히나 효능감을 느꼈던 사례가 있다면.

작년에 있었던 맥도날드 사건, 아실지 모르겠어요. 맥도날드가 버려야 할 식자재를 이용하면서 내부 고발이 발생했는데 오히려 매장에 있는 직원들이 징계를 받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중에 한 분의 징계가 해고 직전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었어요.

시민단체와 알바노조가 관련 부당함을 우선 얘기해 주었고, 제가 한 달 반 동안 1인 시위를 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여기저기 했었어요. 그러면서 주목받지 못했던 사건이었는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회사 입장에서는 귀찮은 존재가 된 거죠. 

이 일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제가 겪었던 땅콩 회항 이후 대기업과 개인 노동자가 싸우는 과정에서의 노하우가 잘 적용이 된 것 같아요. 덕분에 그분이 다시 복직을 하면서 회사는 백기를 드는 상황이었고, 맥도날드 지사장이 국정감사까지 서게 됐습니다. 이 과정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가장 보람 있었던 것 같네요.

저의 이미지하고도 딱 맞는 사례였던 것 같아요. 노동을 대변한다고 하면 민노총-한노총 계열의 큰 노동도 있을 수 있지만 새로 대두된 노동이 참 많잖아요. 제가 한번 싸워본 사람으로서 '내 경험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향후 정치적 활동의 방향성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긍정적인 부분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운 말들도 적잖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정의당에 있다 보니 많이 듣는 얘기가 '박창진이라는 인물을 떠나서 정의당, 그 작은 당에서 뭘 할 수 있어?'라든지 '그래도 뭐, 민주당 찍어주는 게 당선 가능성이 더 있지 않겠어?' 이런 것들이었어요. 국민분들이 '승자 독식' 양당구조에 불만있고 만족하지 못하시면서도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또 '너는 그냥 땅콩 회항의 희생자이자 피해자였고 그냥 25년 동안 비행기 타는 노동자였잖아. 네가 왜 정치를 해' 이런 얘기를 시민분들로부터 듣기도 했어요. 오히려 노동자에 해당하시는 분들도 그런 얘기를 참 많이 하세요. 스카이 나오고, 판검사 출신이어야 정치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사회에 만연하다는 거죠.

제가 직접 사회적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서 한 개인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 겪고선 '정치가 왜 안 바뀌지' '나를 위한 법들이 왜 없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하게 됐거든요. 근데 정치의 나쁜 면에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 다수 시민들과 노동자 계급분들이 '정치? 그건 대단한 사람이 해야 돼, 누군가에게 맡겨야 돼'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좀 마음이 많이 아프죠. 그래서 제가 목표가 있다면 다음 총선에서는 어떻게 됐든 원내에 들어가서, 박수를 받으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어요.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 마침 어제(5월 1일)가 노동절이었습니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 목소리와 힘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노동절이 영어로는 메이데이(Mayday)라고 해요. 제가 항공 승무원을 하면서 들은 메이데이라는 용어는 비상 탈출을 하거나 비상 구조 신호를 보낼 때 '메이데이, 메이데이, K001편' 이런 식으로 낸단 말이죠. 즉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를 구조해 주십시오'라는 신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5월 1일 노동절의 의미 속 한 켠에는 '메이데이'라는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길 위에 선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오랫동안 비행을 하면서 여러 국가들을 참 많이 다녀봤는데, 이렇게 길거리에 노동자들이 많이 나와 있는 나라는 우리 정도의 경제 수준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에 없어요.

이게 우리 사회의 여전한 아픔인데, 그들의 목소리가 울리지 않아요. '왜 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가'를 언론이나 정치가 정확하게, 사실대로 보여주지 않아요. 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법으로 해결하면 되죠. 그런데 그분들은 법으로 해결이 안 되니까 그렇게 나오신 거예요. 이 시스템이 기득권 우선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거든요. 내 목숨을 내걸고 거리로 나가는 거죠.

지금 동국제강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국제강이 '왜 합의를 안 했나,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법대로 할 것이다, 법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라고 답했다는 기사가 있어요. 근데 이건 책임감이 방기 돼 있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제가 정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약자가 어떤 걸 변화 시키려면 죽을 만한 용기를 내야 해요. 지금 3개월 된 임산부 유가족 분이 천막에서 그 투쟁을 하면서 '사과라도 해라'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제가 땅콩 회항 이후에 갑과 을의 문제, 갑질에 대한 문제를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얘기를 저도 많이 듣고요. 예를 들면 땅콩 회항 사건이 났을 때 재벌들이 처음에 절대 사과를 안 하다가 나중에 구속되고 여러 가지 경제적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까 사과를 이제 비공식적으로라도 했어요.

그 이후에 갑질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면 재벌들이 다음날 사과부터 하고 보잖아요? 그게 정말 정치가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나약한 노동자나 다수가 왜 권력을 정치한테 주겠습니까. '네가 그런 역할을 해달라'라고 하는데 안 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막을 치고 길거리에 나가는 겁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런 아우성이 있는 노동 현장들, 당장 어제의 동국제강 현장도 다시 한번 '내가 뭘 해야 될까'를 생각하게 되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 이를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른 걸까요, 사실 정의당의 최근 지지율이 좋지만은 않아요. 하락세가 뚜렷한데 자체적인 원인을 꼽자면.

첫 번째로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정치적 태도의 문제. 두 번째는 대중의 공감을 받아야 되는데 이를 못 받았던 것 같아요. 최근 정의당이 내세워왔던 청년·여성 현안들, '페미 정당 아니냐' 이런 얘기도 참 많이 들었지만 정의당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틀리거나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윤석열 후보도 신지예 씨를 영입하셨잖아요.

모든 게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인데, 그렇다고 하면 '정의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엇이냐', 이거예요. 차별과 배제와 불평등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되지만, 무엇보다도 '자네가 노동, 일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처음 시작하지 않았어? 우리는 너네를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너희는 다른 것만 하고 있어?'라고 보신 거죠. 

여기서 저희가 부족했던 점이 있던 거고, 말과 행동에는 노동 없이 여성·청년만 얘기하면서 '저희 노동 정당이니 찍어주세요'라고 했던 것 같아요. 이는 어떻게 보면 전략이나 기획의 실패일 수도 있는 것 같고, 정의당이 반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무리 좋은 얘기더라도 공감을 얻어야 되거든요. 땅콩 회항이라는 사건이 일어난 후 저는 언론이나 어떠한 법의 체계, 우리 사회 시스템에 보호를 못 받았어요.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 후 제가 저의 얼굴을 공개하고 '이런 일이 있었고 내가 정말 억울하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이 정말 공감을 해주셨어요.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가 오랫동안 뿌린 바가 있었고,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어떠한 불편한 일이었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살아났던 거고 지지를 받았고 그 강력한 기득권들조차도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게 된 겁니다. 

저 개인의 생존에서도 대중의 공감이라는 게 그렇게 큰 역할을 했는데, 정치는 대중의 공감과 그 마음을 얻어야지 표가 오고 표가 권력이 돼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이 부분에서 (정의당이) 확실히 부족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020년 1월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퍼포먼스 속 가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의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020년 1월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퍼포먼스 속 가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의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 그렇다면 향후 정의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당이 아무리 좋고 선명한 신념을 보인다고 해도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이 없으면 수용이 안 되고 소용이 없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내부부터 성찰하면서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어요.

진보 정당은 좀 더 과감한 개혁의 주체, 그리고 정치적인 개혁 정당이라는 의미를 포괄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과감한 혁신'이 과연 정의당 안에 있는가. 오히려 지금 보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보다 정의당 내부가 개혁과 혁신의 면에서 훨씬 더 뒤처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의당 내에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자면 이번에 대선 후보를 결정할 때도 내부 당원 투표로만 했잖아요. 국민에게 표를 받아야 되는데 지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보면 누구나 시민 선거인단으로 들어와서 투표를 할 수 있게 한다든가, 무한 개방이거든요.

그런데 정의당은 그런 문을 열고 있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가 폐쇄적으로 움직이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바로 정의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혁신과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권 교체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혹시 지난 문재인 정권 5년을 평가하자면, 또 이를 통해 향후 윤석열 정권 5년에 대해 조언 내지 경고를 하자면.

물론 저희 후보가 있었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저도 잘 되기를 바라면서 기대가 많았던 사람인데요, 지금 와서 쭉 돌이켜 보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신 것은 이런 것 같아요. 크게 혼란한 상황은 안 만들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코로나 기간 동안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급격하고 심한 고저(高低)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결과가 뚜렷하게 없었지만 임기 초기에 했던 대북 관련 제스처나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정 운영이라고 하는 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통해, 본인이 내각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사 실패죠. 내가 잘 아는 사람, 내가 확신할 수 있어야 되는 사람을 기용했던 것이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김현미 장관의 문제라든지, 또 조국 장관 문제로 불거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두 번째는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입니다. 김현미 장관이 유임할 때도 말이 많았었잖아요. 문제가 있다면 강력하게 개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국 전 장관 때도 그렇고요. 또한 추미애 장관과 검찰 사이에서의 알력 다툼이라고 할까요. 그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강력한 조정자 역할을 하셨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었잖아요. "법무부 장관하고 나하고 이렇게 다투고 있으면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론 기질이나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고, 더 좋게 생각하면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와서 볼 때는 참 안타까운 면이라 생각합니다.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가 2일 여의도 앞 카페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환 기자)

윤석열 정부, 본인이 '상식'과 '공정'을 화두로 이 자리까지 오셨잖아요. 예시를 들어 드릴게요. 제가 '갑질 근절'로 이 자리까지 왔는데 제가 갑질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오지 않을까요. 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윤 당선인이 인선에서 상식과 공정을 부정하는 일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같은 경우에 그렇잖아요. 조국 전 장관에게 들이대던 잣대와 너무 다른 거예요. 당선인은 '아직 결론이 안 나서 지켜봐야 된다'라고 얘기하는데, 조국 사태 때는 안 그랬단 말이죠.

이전에는 국민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을 때도 없고, 국민들의 의견을 한 곳으로 취합하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스마트폰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정보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의견도 통합하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촛불혁명도 그렇게 일어났죠.

현명한 국민을 우매한 국민으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아직 시작 안 하셨고, 지켜보고 있지만 이런 행태로 제왕적 권력만 지향하시게 되면 분명히 (당선인이 원했던 방향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되는 거죠.

- 정당인,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박창진의 향후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일단은 국회의원, 원내로 들어가야겠다는 소망을 더 간절하게 바라는 입장이 됐어요. '원내 권력이 없는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작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대할 때 참 슬플 때가 많거든요. 내가 정말 원내 권력이라도 있었으면 수장이라고 하는 사람들, 혹은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불러서 얘기할 수 있을 텐데, 저는 그냥 말을 보태거나 피켓을 드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불의를 해결하는 데 내 권력이 너무 작구나,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권력이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얘기하면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그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에, 제대로 된 사람한테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꼭 제가 아니더라도요.

3선·5선 역임하며 본인 재산만 축적하면서 배달의민족에 음식 하나 시켜본 적도 없는 분이 플랫폼 노동이 어쩌고, 이런 얘기하는 세상. 소위 말해 보좌관을 통해 글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계세요.

저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 제가 땅콩 회항 얘기를 할 때도 국회의원들을 한 6·70 명을 만나 뵀어요. '나를 좀 도와달라.' 근데 실제 국토교통위 항공 분과를 하고 계시는데도 비행기가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모르시는 분들이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 "내렸으면 그냥 가방 메고 오시면 되죠. 승무원은 비행기 타고 내리는 거 쉽잖아요."

그분이 저를 폄하한다기보다는 관련 지식 자체가 없으신 거죠. 즉 우리 국회에 다양한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절함이 필요한 곳에, 간절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제가 실제적 권력을 얻는 정치인이 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거 같아요. 그게 어떤 방향이든 제가 해 나갈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노동절인 어제도 한남동 SPC 파리바게뜨 집회 현장을 갔는데, 잠시 카페에서 쉬는 와중에 두 분이 오셔서 "당신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도 정말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땅콩 회항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평범한 노동자였던 박창진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주체가 된다면 사회가 얼마나 바뀔까' 하는 꿈을 찰나에 또 꾸게 되더라고요. 연예인들처럼 알려졌다고 해서 돈을 벌거나 하진 않지만, 앞으로도 길 위에서 저를 더 자주 뵙게 되실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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