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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버지의 빈 자리

[특별기고] 아버지의 빈 자리

  • 기자명 김희정 이사장
  • 입력 2022.05.08 12:49
  • 수정 2022.05.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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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사)원코리아 이사장·민주평통 상임위원
김희정 (사)원코리아 이사장·민주평통 상임위원

[뉴스더원=김희정 이사장]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나는 때늦게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의 멋진 연인이었을텐데, 뭔가 큰 일을 해보고 싶은 야심찬 청년이었을텐데, 나에겐 도무지 아버지의 젊은 날의 초상이 그려지질 않았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자식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그저 가정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할 커다란 나무같은 모습으로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란 이름은 살아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뒤에 더욱 그리워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후에야 두고두고 보고 싶어지는 그런 아픈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단란했던 흑백 가족사진 속에서나 볼수 있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 (사진=김희정)
단란했던 흑백 가족사진 속에서나 볼수 있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 (사진=김희정)

아버지라는 이름 뒤에 숨겨놓은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실컷 소리 내어 울어보지도 못하고 시커멓게 탄 까만 숯껌댕이를 가슴에 지니고 사는 하늘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그 존재만으도 자식들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는 버팀목인지도 모르겠다.  

그 땐 왜 몰랐을까. 헤아릴 수 없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바다같이 넓은 그 마음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쓰라린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작아지는 남자의 어깨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버거웠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다.

나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호박 잎 ’이란 시를 지어 아버지 무덤 앞에 바쳤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한 번도 해 드린 적이 없는 말을 나지막히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 아버지 사랑해요. 사랑해요. ’ 

아버지와 호박 잎 / 김희정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품)

바쁘다는 것이 
더 이상 핑계가 될 수 없는 
모두가 바쁜 세상 속에 사느라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한 것이
죄스러운 막둥이 앞에

사람 좋은 아버지
시골 햇볕 바르게 받고 
건강하게 자라난 호박 잎 따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속
뭉클하게 바르시고는 
어서 먹으라 건네주신다.

너무 진해서
투박해 보이던 아버지의 사랑
호박 잎에 싸여
목구멍을 못 넘어가고 있는데
자꾸만 자꾸만
어서 먹으라 건네주신다.

쌉싸르한 초록향기
씹힐수록 겸손해지는 참된 맛을
아버지의 무능이라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
자식들 보다 남 먼저 챙기시며
허허 웃으시는 웃음소리도 
무책임하고 헤픈 정 같아서 싫었다.

그 싫던 웃음소리
어느새 세상을 몇 해나 바꾸어 놓고
거저 나이만 든 불효자식을 
북한산 양지 바른 곳에 무릎 꿇려 앉혀 놓으신다.

소주 한잔 원하시는 무덤 앞에서
때늦은 참회는 호박 잎에 싸여
아직도 목구멍을 못 넘어가고 있는데
인정 많은 아버지 
자꾸만 자꾸만
어서 먹으라 건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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