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어로만 여겨지던 에이전트형 AI(사용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독립적으로 추론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가 빠르게 차기 대변혁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인터넷이 작동하는 방식을 재정의할 수 있는 변화로, 디지털 생태계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이 물결은 경쟁 구도를 재설정할 흔치 않은 기회를 나타낸다. 글로벌 거대 기업들보다 뒤처져 왔던 대형 언어 모델(LLM) 분야에서의 격차를 벌려온 한국 기업들이 이제는 보다 예리하고 현지화된 전략으로 에이전트 AI 분야에서 발판을 다지려 하고 있다. 검색 포털로 잘 알려진 네이버와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는 카카오톡의 운영사 카카오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해 AI 시대에 급변하는 이용자들의 적응 속도에 맞추려 한다. 자동차 산업에서 모빌리티 플랫폼인 T Map Mobility에 이르기까지, 대화형 보조 도우미를 통해 스마트한 동반자를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에이전트 AI 시스템을 시범 운영해 비즈니스 운영의 비용과 노력을 수개월 단위로 크게 줄이고자 한다.
이들 노력이 모여 한국이 기초 모델에서의 추격을 넘어 글로벌 AI 무대에서 고유한 역할을 차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준다. 기업-소비자(B2C), 기업-기업(B2B), 모빌리티 서비스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는 기반을 다지는 모습이다.
일상 속의 에이전트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기업에게 에이전트형 AI의 부상은 포털과 메신저가 예전의 디지털 게이트웨이가 되었던 시절의 재현처럼 느껴진다. 오늘의 경쟁은 단지 똑똑한 에이전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포를 선점하고, 그것들을 선별하며, 사용자의 일상에 녹아들게 하는 데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모바일 사용에 강하고 “슈퍼앱” 생태계에 친숙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에이전트 동반자를 현지화되고 매끄럽게 통합되도록 설계한다면 경쟁 우위를 얻을 여지가 크다.
AI 에이전트를 일상 속에 심는 아이디어는 아직도 미래지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카카오톡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는 카카오의 발걸음은 속도가 있다. 카카오는 과감한 방향 전환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김범수 회장이 설립한 이 기업은 PC 중심의 시절에 모바일 우선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무제한 무료 메신저를 제공하는 카카오톡으로 한국의 모바일 생태계를 교란했다가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 핀테크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지금 이 회사는 AI에서도 비슷한 궤적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카카오톡을 통해 사용자를 더 넓은 카카오 생태계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에이전트를 중심에 놓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용자가 앱을 벗어나지 않고도 AI가 작업을 처리하도록 만들어, 한 번에 더 오래 앱에 머물게 하는 것이 목표다. 카카오의 AI 어시스턴트 칸나나(Kanana)가 이 전략의 핵심이며, OpenAI와의 파트너십으로 ChatGPT를 메신저 앱에 직접 도입하는 것이 그 부가 전략이다.
“카카오는 자사의 에이전트에 ‘도구 호출(Tool Call)’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의 요청을 이해하고 적절한 카카오 서비스를 바로 실행하도록 했다”고 카카오의 AI 시너지 태스크포스의 김승 팀장이 한국 조선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로 이를 통해 사용자는 카카오톡 안에서 선물, 지도, 멜론, 캘린더 등 다양한 카카오 서비스에 매끄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앱 간 전환이나 메뉴를 둘러볼 필요가 없다.”
회사가 실제로 시연한 사례는 반려견과 함께 가족이 여행을 계획하는 모습이었다: 칸나나는 반려동물 친화적인 숙소를 자동으로 제안하고 예약까지 완료하게 도와준다. 사용자는 KakaoTalk 채팅방에 여행 정보를 공유하면, ChatGPT가 가족 구성원의 일정과 선호를 조정해 일정표를 만들어 준다. 이 업데이트는 10월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이 생태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카카오는 에이전트들이 앱 간 연결을 단순화하는 개발자 프레임워크인 Model Context Protocol(MCP)을 도입한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앱마다 AI 채팅봇이 각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학습해야 하는데, MCP는 이를 하나의 표준으로 대체해 칸나나가 사용자의 요청에 응답해 올바른 서비스를 호출할 수 있게 한다. 개발자들은 MCP 호환 도구를 추가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이 도구들은 PlayTools라는 새로운 마켓플레이스에 업로드되어 사용자들이 모듈형 앱처럼 손쉽게 연결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는 한국의 지배적 검색 엔진 운영자로서 이와 비슷한 로드맵을 따르며, 서비스들을 에이전트형 AI 체계 아래 연결하는 축으로 검색을 배치하고 있다. 2027년까지 핵심 포털을 “AI 탭”으로 전환해 키워드 기반 질의에서 벗어나 챗봇형 상호 작용에 가까운 대화형 방식으로 서비스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현지 커뮤니티에서 얻은 수년간의 데이터를 활용해 글로벌 경쟁자들보다 문화적이고 언어적으로 맞춤화된 답변을 제공하겠다는 차별화 전략을 제시한다.
“현재 핵심 에이전트와 수직적(vertical) 에이전트를 병행해 개발하고 있다”고 네이버의 AI 검색 책임자 김상범은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말했다. “핵심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의도를 분석하고 어떤 서브에이전트를 호출할지 계획하며, 수직적 에이전트는 실제 세계의 행동과 연결되는 기능 개발에 초점을 둔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각 수직이 적절한 시점에 매끄럽게 연결되는 하나의 에이전트로 통합될 것이다.”
카카오와 달리 네이버는 아직 빅테크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맺지 않았다. 자체 개발한 HyperClova X가 여전히 공적으로 알려진 기본 모델이지만, 경영진은 LLM 파트너십에 대해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다”라는 신호를 남겼다. 또한 다중 모달성(음성, 영상, 위치)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며 에이전트가 실제 세계의 맥락에 직접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다중 모달 정보를 통합해 음성, 영상, 위치를 시스템에 반영하면 실제 생활의 행동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으며, 이는 앞으로 네이버가 함께 제공할 온라인-오프라인 서비스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네이버는 현대자동차와의 제휴를 통해 모빌리티 에이전트도 추진 중이다. 네이버의 지도, 콘텐츠, 검색, 일정 관리 기능을 현대의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에 통합해 운전 내비게이션은 물론 날씨, 뉴스, 예약, 개인 일정까지 음성 명령 한두 마디로 처리하는 차 내 어시스턴트를 구상하고 있다.
한편 SK그룹의 계열사인 T Map Mobility의 내비게이션 서비스 운영사 역시 자사의 모빌리티 에이전트를 완전한 형태로 구현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축적된 현지 데이터의 우위와 내비게이션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자사의 서비스와 SK 그룹의 결제, 통신, 전기차 인프라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으려 한다. 계획의 목표는 계획 수립에서 예약, 주행, 주차, 충전에 이르는 종합적인 여행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방향 안내를 넘어 맥락을 이해하고 필요를 예측하는 지능형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시작했다”고 T Map의 데이터·혁신 부문 책임자 박소하가 9월 기자 간담회에서 말했다. “모빌리티는 더 이상 하나의 앱이 아니다. AI가 자동차, 대중교통, 물류, 일상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다.”
사무실 속의 에이전트
기업 부문에서 한국 기업들은 전통적인 AI 어시스턴트를 넘어, 더 복잡하고 자율적인 워크플로를 처리하는 맞춤형 AI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에이전트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LG그룹의 IT 서비스 자회사 LG CNS은 최근 캐나다 AI 기업 Cohere와 협업해 에이전트 기반 워크를 선보인 Agentic Works를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기업이 내부 데이터와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맞춘 자사 에이전트를 생성하고, 모니터링하며 조정할 수 있게 한다. 클라우드나 온프레미스 인프라에 배포할 수 있어 고객의 니즈에 따라 융통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HR, 일정 관리, 번역, 문서 관리를 위한 미리 만들어진 에이전트 모음인 AX Sync를 함께 선보였다. 모든 에이전트는 ‘슈퍼 에이전트’가 조정하는 체계로 운영되며 매일의 브리핑, 승인, 회의, 실시간 번역까지 자동화한다. 이미 LG디스플레이 내에서 활용 중이며, 초기 성과로 생산성이 10% 증가했고, 3년 안에 30% 향상을 목표로 한다. 또한 외부 구독을 AX Sync로 전환함으로써 연간 100억 원 이상(약 700만 달러) 절감 효과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의 직장은 AI에 의해 인간이 넘겨받는 일이 아니라, AI 에이전트와 함께 끝에서 끝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사람들로 이뤄질 것”이라고 LG CNS의 현신균 CEO는 말했다. “2027년까지 특화된 AI들이 팀 단위로 협력하는 다중 에이전트 생태계를 구상하고 있다.”
삼성 SDS도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FabriX 플랫폼은 고객이 자동 코드 변환기처럼 특화된 에이전트를 설계할 수 있게 해, 레거시 시스템의 현대화를 돕는다. Brity Copilot은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번역, 자원 추천, 음성 명령을 통한 작업 실행 등을 제공한다. 한편 Brity Automation은 재무, 인사, 물류 분야의 대형 운영에 자연어 프롬프트를 적용해 작동한다. 이 도구들이 일상적인 사무 작업의 최대 70%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고 회사는 추정한다.
그러나 기업 채택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장 조사기관 Grand View Horizon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용 에이전트 AI 시장은 2024년 6100만 달러 규모에 불과했지만 2030년에는 8억 7560만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차원에서 Gartner는 2026년까지 40%가 넘는 기업들이 대화형 AI 에이전트를 도입할 것이며, 2023년의 5%대에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맥킨지 역시 생성형 및 에이전트 AI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조 6천억 달러에서 4조 4천억 달러의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하되, 그 중 가장 큰 몫은 지식 업무의 자동화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의 최대 기업인 삼성과 LG는 아직 초기 단계인 이 분야에서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인프라(호스팅, 오케스트레이션, 모니터링, 거버넌스)를 자체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에이전트 자체만큼이나 중요해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당장 과제는 기업용 에이전트가 실제 비즈니스 운영의 복잡한 현실을 신뢰성 있고 확장 가능하게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이다.
BY LEE JAE-L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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