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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평론] 이재명은 언제 철드나 

[진중권 평론] 이재명은 언제 철드나 

  • 기자명 진중권
  • 입력 2021.07.05 00:00
  • 수정 2021.07.05 08:03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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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더원=진중권] 역사는 피곤할 게다. 지난 정권에선 보수우익이 역사전쟁을 벌여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1948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지극히 주관적 해석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공적 사실로 강제하려 한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피곤한 것이 386세대의 NL 사관이다. 이들은 학창 시절에 읽은 ‘해방전후사’ 하나로 이른바 ‘시각교정’을 당한 후, 그 편향된 인식을 아직 벗어버리지 못했다. 이는 정치적 NL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이른바 PD 세력도 그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며칠 전 이재명 도지사가 이육사 기념관에서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했다.”고 발언했다. 이 지사야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이 발언의 바탕에 깔린 역사인식만큼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다. 즉, 쌍팔년도 운동권 집단의 시대착오적 역사인식이다. 

당시 운동권은 대한민국이 친일파와 미군의 합작으로 태어났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NL은 대한민국을 그냥 미제의 구(舊)식민지로 여겼다. PD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약간의 자율성을 누리는 미국의 ‘신(新)식민지’로 규정했다. 거기서 나오는 실천적 결론은 물론 민족해방투쟁. 

거기서 이재명 지사는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했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새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친일파를 청산해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곧 현실인식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이재명 지사는 왜곡된 역사인식과 달리 대한민국의 내각의 다수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은 임정 출신이었다. 국방부장관 이범석, 지청천 무임소장관은 광복군 출신, 이인 법무장관과 김도연 재무장관은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경력이 있는 독립운동가였다.

국회의장 신익희는 임정의 임시헌장을 기초한 인물이고,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는 좌우합작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출신이었다. 결국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요직을 맡은 이들이 모두 독립운동가들이었다는 얘기다. 이들도 ‘친일파 + 점령군’과 합작한 민족반역자들이라 비난할 것인가.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 활동을 중단시키고 친일파를 다수 등용한 것은 정부수립 초기에 사회 각 분야에 테크노크라트가 부족했고, 미소 냉전 체제 하에서 반공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민족사적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나, 대한민국 역사 전체를 그 오점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는 아예 김일성의 지시로 친일파를 등용했다. 건국은 했는데 테크노크라트는 부족하고, 조국통일을 위해선 누구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니 어쩌겠는가. 그러다 보니 정작 북측 인사들이 남쪽에서 벌어지는 친일파 청산 캠페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미군을 ‘점령군’이라 부르던 좌익이 정작 신탁통치에는 찬성하고 나섰다. 일본의 군사력을 궤멸시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 군대까지도 몰아내야 할 ‘점령군’이라 부르던 그 열렬한 민족해방의 전사들이 모스크바의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점령군의 통치를 연장하라’고 외쳐대니, 이 또한 코미디가 아닌가. 

이재명 지사는 ‘점령군’이라는 말은 미군 자신도 사용한 것이라 변명한다. 말장난이다. 미군이 사용한 ‘점령군’이라는 말은 ‘일본의 영토를 점령한 군대’라는 뜻이다. 반면 남로당이 사용하던 ‘점령군’이라는 말은 ‘조선의 영토를 점령한 군대’라는 뜻이다. 이 지사는 이 둘의 차이를 슬쩍 흐린다. 

물론 대권주자로 나선 그가 창씨개명한 독립투사를 어머니로 둔 독립운동관장처럼 주한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할 점령군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제까지 운동권 내에서 아무 검토 없이 사실이나 진실로 받아들여져 온 이데올로기적 망상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뿐이리라. 

문제는 이 운동권 멘탈리티다. 이는 그만이 아니라 민주당은 물론이고 조국, 박노자 같은 지식인들까지 널리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창가를 부르고, 총선이 한일전이라 외치고, 친일파 묘 파헤치고, 욱일기 금지법이나 만드는 것은 21세기에 어울리는 짓이 아니다. 이제 다들 철 좀 들자. 

보수의 반공주의 사관이 정(正)이라면, 운동권의 민족주의 사관은 반(反). 둘 다 제 역할을 했고, 둘 다 시대착오가 되었다. 이제 합(合)으로 나아갈 때다. 대권주자라면 이념으로 갈라쳐 나라를 해방전후사로 되돌릴 게 아니라 진영을 넘어 국가공동체의 공동의 기억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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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태 2021-07-11 17:05:51
잘못된 정치인 들, 정신차리도록(변화는 없겠지만)
보통사람들을 대변해 주심에 늘 감사합니다.
시원합니다.
장원섭 2021-07-05 11:57:10
진 교수님.
늘 많은 것을 깨우쳐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