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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한민국 부속도서 대마도

[특별기고] 대한민국 부속도서 대마도

  • 기자명 이형구
  • 입력 2022.07.0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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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생활법률문화연구원 원장/법학박사 이형구

이형구 (사)한국생활법률문화연구원 원장/법학박사
이형구 (사)한국생활법률문화연구원 원장/법학박사

[뉴스더원=이형구]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로 명시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한민국 영토와 관련된 내용들을 거론하자면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야 하므로 조선시대 세종대왕 원년에 대마도 관련 영토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여본다.

국제적으로 일본의 약탈근성과 야만적 행위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은 제일 근접에 있는 대한민국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세종대왕은 대한민국 남해 도서지방에서 일본인들이 무법천지를 일삼고 특히 대마도를 거점으로 삼고 거듭되는 약탈을 일상화하여 1419년 이종무 장군으로 하여금 대마도에서 일본인들의 무법행위를 단절시켰다. 이 자리에서 도주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서약까지 하였다고 한다.

일본 장수 풍신수길은 조선침략을 하기 위하여 일본 무장에게 명령하여 만든 지도 ‘팔도전도(1592년 이전)’ 이는 조선 팔도를 말한다. 이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하여 침략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조선 500년간 대마도 도주는 조선의 임금으로부터 관직을 받았다는 기록이 수두룩 한다. 1830년 일본에서 만든 조선국도를 보면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의 영토로 표기되어 있고 1855년 영국지도, 1865년 미국지도 등 많은 국내외의 역사 기록문에 대마도는 명백히 대한민국 땅이다.

1734년 프랑스에서 만든 한국령 지도에도 대마도를 ‘TWI-LI-TAU’로 표기하고 한국령으로 한 지도가 있다.( 이 내용은 2005. 4. 28. 연합뉴스에서 발표된바 있다).

일본이 즉시 대마도를 대한민국에 반환해야 하고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문서가 있다. 살펴보자.

일본은 1861년 미국과 영토문제로 분쟁을 한 지역이 있다. 그 이름은 '오가사와라' 군도다. 미국이 1853년 무인도 오가사와라 군도를 점령하여 식민지화 하였다. 이를 일본이 1861년 알아차리고 미국에게 “삼국접양지도”(일본어 필사본)을 미국에 제시하면서 오가사와라 군도를 반환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미국은 이 지도가 일본이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반환을 거부하였다. 

일본은 다시 원본인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 1832년)을 제시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오가사와라 군도가 일본땅임을 인정받았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지도이므로 더 이상 거부를 못하였고 오가사와라 군도는 1876년 정식으로 일본에 편입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후 1946년부터 미국에 의해 통지되어 오다가 1968년에 일본에 반환되었다.

우리가 왜 프랑스가 1832년에 제작한 '삼국접양지도'를 묵과할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오가사와라 군도를 미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반환받은 결정적 근거 지도이기 때문이고, 이 지도에는 울릉도, 독도, 대마도가 조선땅으로 명시되었다는 것이다. 대마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반문하여 본다.

일본의 수없는 역사왜곡에 현대사에도 우리는 통째로 휘둘려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 대마도 지도에 대한 일본의 저열하고 비열한 만행을 있는 사실대로 적시하여 보면, 오가사와라 군도 분쟁 당시 활약했던 일본인 ‘다나베’는 1868년 프랑스 대사로 활동하면서 1868년 대마도의 일본귀속을 앞두고 대마도가 조선영토로 표시되어 배포했던 클라프로트의 “삼국접양지도(프랑스어판,1832년) 수집 폐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위조본을 만들었다. 국제정세에 열악한 조선은 이를 저지할  능력도 대항할 국력 자체마저도 없었다.

하나 더 보자. 다보하시 기요시는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는 해에 죽었다. 이 자는 ≪근대일본-조선관계의 연구≫를 발간한 일본 사학자인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23년 7월 일본인 사학자 구로이타 가쓰미와 함께 대마도 현지로 가서 한국관련 문서 6만6469매, 고기록류 3576권, 고지도 36매, 고서류 18점, 그림53점 등을 불에 태워 버렸다고 일본인 사학자 하라다 사이에쿠가 전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일이 하나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건국 3일 만에 익히 잘 알고 있는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하였다.

그 후 수차례 대마도 반환을 촉구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내용은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하라!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가 관리한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무력 강점했지만 의병들이 격퇴한 전적비가 남아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지체없이 한국에 돌려줄 것을 촉구한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한 것이다. 그 후 배우고 잘난 대한민국 위정자들 중에 어느 누구 이런 국토 수호 의지를 일본에 촉구한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수 는 없는 국운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한 집안 식구간의 유혈사건과 같은 동족간의 비극중의 비극인 전쟁을 하게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1950년 대한민국 민족간의 유혈 전쟁으로 곧바로 경제회복을 넘어 부흥까지 하였고 더욱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촉구를 전쟁하고 있는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필사적 로비로 무산시켰다는 사실을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몇 명이나 알고 있을까?

세계 여러 국가의 역사가 극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거나 자강하지 아니하면 지구상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대한민국에게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할 때 일본이 못 넘겨주는 이유가 대한민국은 아직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힘이 없고 열악한 나라인가. 왜 대마도를 넘겨달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 두 번도 아닌 수 십번 촉구를 하였다는데 작금의 정부는 단 한 번도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말 못하고 있는 것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20대 정부에게 주문한다. 즉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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