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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편안하게 영화 보고, 많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편안하게 영화 보고, 많은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1.12.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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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스프린터' 최승연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2021 개막작 '스프린터'를 연출한 최승연 감독. (사진=임동현 기자)
서울독립영화제 2021 개막작 '스프린터'를 연출한 최승연 감독. (사진=임동현 기자)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지난달 26일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 2021의 개막작은 육상 선수 세 명의 각각의 도전을 담은 영화 <스프린터>였다.

30대 현수(박성일 분), 20대 정호(송덕호 분), 10대 준서(임지호 분)가 국가대표로 올라서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10초의 승부를 위해 기나긴 시간의 노력을 해야하는 세 선수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 <스프린터>를 만든 최승연 감독을 지난달 30일,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리는 CGV 압구정 부근에서 만났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됐고 관객들과의 만남도 가졌다. 소감은?

기분도 좋고 신기하기도 하고... 여러 느낌들이 다 섞여 있어서 딱 '이런 기분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영화제가 끝나고 극장 개봉이 되어야 비로소 '아, 이런 기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5분, 10분 만에 전석이 매진됐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았다. 

2016년 <수색역>으로 데뷔했다. <스프린터>와 달리 강렬한 영화여서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수색역>의 강렬함은 첫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내 색깔을 넣을 수 있겠다라는 패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 수색역 근처에 살았는데 그 때 느낀 감정이 영화에 반영됐다. 

어린 시절 수색역 옆에 서울 경기의 쓰레기가 다 모이는 난지도가 있었고 쓰레기차 30대가 연이어 가는 풍경을 본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현수막이 기억나는데 '88올림픽으로 잠실이 떴다면 2002 월드컵엔 수색이 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장이 상암으로 들어오면서 상암동만 개발됐고 수색은 그대로 남겨졌다. 영화에서 수색의 재개발이 불발되고 상암동으로 이사하는 내용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수색역>은 수색역이라는 국한된 공간의 이야기였고 <스프린터>는 육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인데 시기나 인물에 대한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비슷하게 갔다. <스프린터>는 좀 더 성숙한 영화를 만들었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둘 다 소중한 작품이다. 

데뷔작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영화가 나왔다. 

큰 영화를 준비했는데 그게 잘 안되면서 시간이 길어졌고 2019년에 제작 지원을 받아 <스프린터>를 만들고 지금 방송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실제로 소비한 시간은 1~2년 정도다. 지난해 혹은 올해 영화가 개봉했다면 기간이 짧아졌겠지만 그게 길어지니 5년, 6년이 된 것이다.

'육상'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0.001초의 벽을 넘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는 현수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로 기획했는데 '나이가 많고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현수와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10대 소년이고 기록을 점점 단축해가는 준서가 등장했고 지금 정상에 있는 사람, 그 정상을 유지하려는 사람을 만들다보니 정호가 등장하면서 완결된 한 편의 장편영화로 완성됐다.

서울독립영화제 2021 개막작 '스프린터'. (사진=서울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2021 개막작 '스프린터'. (사진=서울독립영화제)

"결국 마지막은 울면서 나간다". 준서의 육상 선생인 지완(전신환 분)이 한 말이다. 비인기종목의 현실을 담은 대사 같은데

야구 좋아하나?(기자: 좋아한다) 이종범 선수 좋아하나?(기자: 타이거즈 팬이다) 어릴 때부터 이종범 선수를 좋아했는데 은퇴할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참 슬펐다.

정상에 있는 선수들은 2등으로 떨어지면 그 때 은퇴를 하는데 이종범 선수는 나이 들어서 외야수로 전향하고 2군으로 떨어지고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다시 들어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잖나.

그래서 더 이종범 선수를 좋아했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 감정이 <스프린터>의 현수로 이어진 셈이다. 

국가대표 결정전에서 4위로 탈락한 현수에게 아내 지현(공민정 분)이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잘한거야"라고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아마 현수는 이 말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을 것이다. 참 애매한 케이스인데 비단 육상뿐만이 아니라 일터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영화처럼 현수가 은퇴를 하는지 마는지가 불분명한 게 더 맞는 것 같다.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미지수다. 

약물에 손을 댄 정호에게 실망하면서도 감싸주는 코치 형욱(최준혁 분), 정규직 전환 때문에 준서를 가르치는 것에 갈등하는 육상 선생 지완이 등장한다.

다들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의롭게 살고 싶어하지 않나. 하지만 일상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챙겨야하는 상황이라면 꼭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라도 잘못을 눈감아주는 식으로 한 배를 타고 가는 게 우리 모습이다.

당장 코치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고 정규직이 되면 연봉도 오르고 차도 구입할 수 있는데 쉽게 정의를 선택하기는 어렵지.

아마도 이 세 명의 선수 중 '1위'를 결정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다(웃음).

정호가 1등을 한 것이 내 나름대로는 반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관객의 절반 이상은 현수나 준서가 1위를 차지하는 결말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 영화들이 워낙 반전이 많으니까(웃음). 게다가 정호는 정상을 계속 차지하고 있고 약물까지 했으니 '쟤가 1위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수의 경우는 국가대표가 되는 3위 안에 들게 해서 따뜻한 내용으로 만들까, 아니면 탈락시켜서 현실은 이렇다라는 걸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현실을 택한 케이스인데 정호가 도핑에 걸렸다는 연락이 왔으니 4위인 현수가 국가대표가 됐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뒷이야기는 영화에 들어가지 않지만 이 영화의 열린 결말을 보면서 영화 외적으로 나름대로의 결말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한 이유다.

최승연 감독(맨 왼쪽)과 '스프린터'의 배우들. (사진=임동현 기자)
최승연 감독(맨 왼쪽)과 '스프린터'의 배우들. (사진=임동현 기자)

코로나 이후 OTT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독립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지

넷플릭스에도 좋은 독립영화들이 많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오징어 게임> 같은 화제작이다. 어떻게 이 영화들을 보게하느냐라는 문제가 남아있고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는데 이를 어떻게 공개하느냐라는 문제도 남아있다. 

그래도 독립영화가 공개되는 시장이 작아지는 상황에서 창작자와 배급망이 공유되는 OTT가 있었기에 다같이 죽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상황이 맞물리면서 OTT가 부상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극장이 OTT보다 더 효율적이고 재미있다는 관객들의 생각이 있다면 다시 극장으로 오게 될 거라 믿는다.

끝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지만 요즘엔 무거운 영화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하고 지옥문이 열리고(웃음)... 독립영화에서도 가난, 폭력, 죽음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물론 좋은 영화들이 많지만 꼭 그렇게 표현해야하나라는 영화도 있는 게 지금이다. 

그런 점에서 <스프린터>는 관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봤으면 좋겠고 영화를 보면서 인물들과 자신의 공통점을 찾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정년 퇴직을 한 60대 관객이 현수를 보고 동질감을 느끼고 이제 막 직장을 잡은 사회 초년생이 준서를 보며 '어? 나와 비슷한데'라며 흥미를 갖는, 그리고 영화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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