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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수근의 시간, 미석(美石)의 공간...개관 20주년 특별전

[기획] 박수근의 시간, 미석(美石)의 공간...개관 20주년 특별전

  • 기자명 평담 박희제
  • 입력 2022.10.26 13:36
  • 수정 2022.10.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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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25일~3월 26일)
박수근미술상, 인천의 뚝심 설치미술가 차기율 작가 수상

지난 25일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특별전 개막과 함께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박평담 시민기자)
지난 25일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특별전 개막과 함께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박평담 시민기자)

[뉴스더원=평담 박희제] '박수근의 시간, 美石의 공간'.

지난 25일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외벽에 '박수근스러운' 대형 걸게 현수막이 걸렸다.

평생 나무, 여인, 어린이를 소재로 바위 질감의 순박한 그림을 선보였던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작품을 배경 삼아 그의 아호 '미석'이란 단어가 들어간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 특별전(25일~2023년 3월 26일)을 알리는 현수막이다.

이날 '박수근 미술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단풍에 물든 박수근미술상 시상식

 날씨가 쌀쌀해지고 단풍으로 물든 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박수근미술관 전경은 평화롭고,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박 화백이 태어난 고향이어서인지 미술관 초입부터 예술 향기를 마구 발산했다. 미술관 입구의 아파트에는 동별로 앞뒤 벽면에 박 화백 작품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었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수근수근 카페'가 관람객을 맞았다. 산마루 평원에 펼쳐진 미술관으로 들어서자 박 화백 그림에 등장하는 빨래터가 있던 개울과 작품 속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품, 정원, 나무가 잘 어우러져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예술세계로 푹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날 오후 2시 각지에서 온 200여 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제7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이 상은 박 화백을 기리기 위해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동아일보, 강원일보가 2016년 제정했다. 수상자인 차기율 작가(인천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창작지원금 3천만 원과 조각상패(박수근의 '아기업은 소녀' 형상)를 받았다.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차기율 작가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평담 시민기자)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차기율 작가가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평담 시민기자)

차 작가는 "미술교과서 한 켠에는 박수근 선배님의 작품이 항상 등장했고, 한국 미감과 향토성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해서 미술가를 꿈꿀 때부터 그는 배우고 익히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며 "시류에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전진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선사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박 화백의 투박하지만 세련된 조형 언어를 본받으면서 고통에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작품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서흥원 양구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에서 태어나 박수근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미술관을 세운 지 20년이 지나자 주변이 '박수근 마을'이 되었다"며 "많은 예술인이 양구로 이사를 오고, 외국인들도 양구에 빠져들고 있어 박수근미술관이 국내 최고 현대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걸 실감한다"고 자랑했다.

또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축사에서 "박 화백은 고난의 시대를 통과해 독자적 미술 세계를 구축하고, 주옥과 같은 작품을 남겨주었다. 제도교육과 거리가 먼 가시밭을 걸으며 농촌과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한국인의 원형과 같은 화풍에 반해 세계인이 양구에 줄을 서서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수근 미술상' 수상자 차기율 작가의 작품세계

차기율 작가. (박평담 시민기자)
차기율 작가. (박평담 시민기자)

인천대에 재직 중인 차 작가는 다양한 돌, 나무, 금속 등의 소재를 바탕으로 자연의 순환을 작품에 담아왔다.

그는 상업적인 예술 활동을 거부하면서 민중미술이나 순수미술 등 어떤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추구해왔다.

박수근미술상 심사단은 "차 작가는 동양의 전통 철학에 바탕을 두고 박수근의 치열한 예술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했다. 

기자는 10년 전 차 작가와 함께 인천 백령도에서 진행된 인천아트플랫폼의 평화미술프젝트 답사를 다닌 적이 있다. 

그는 북한 땅이 바라다보이는 백평도 북단 야외공간에 방송용 대형스피커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설치했다. 이 대형 스피커는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철거된 것이다. 분단의 상징인 대북 선전용 스피커를 평화 염원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백령도 콩돌해안 등 해변을 다니면서도 기이한 돌만 보이면 그대로 배낭에 담았다. 걸음이 길어질수록 배낭은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녔다,

또 인천 원도심의 쓰러져가는 10평 남짓한 주택을 대안 전시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는 그의 작업을 본 적이 있었다.

주택이라는 공간을 '도시의 지표'라고 설정하고 구들장, 부엌(정지), 벽체 등 내부를 미술공간으로 재단장하면서 당시 그 집에서 생활할 때 남아 있던 옛날 라면 봉지, 플라스틱, 벽돌, 시멘트 파편 등을 발굴하는 예술 행위를 통해 기억을 추적했다.

그리고 '공간 듬'이라는 이름으로 주민 주도 전시기능 중심의 작은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10년 가까이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돈 안되는' 예술활동을 하고 다닌다. 

1985년 대학 졸업 후 10년간 주로 민중미술 계통의 사람들과 어울려 그룹전 형태로 미술작업을 벌였고 돌연 해외로 떠났다. 무작정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 예술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에 시달리며 전국 산천을 떠돌아다니는 방황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그는 1999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땅의 기억'이란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돌, 흙, 나무 등 자연의 날 것 그대로의 재료를 작품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아마도 어릴적 고향에서 보았던 경기 화성의 해안 갯벌과 평야의 자연물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이런 기억이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포도나무와 자연석, 철을 이어 붙인 설치 작품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 사이'는 그의 대표적인 설치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선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도 주요 소재로 등장시킨다. 

차 작가는 "자연이 만든 대범함은 이길 수 없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의 산물과 협업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늘 강조한다. 

"돌멩이라는 건 단순히 무기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수십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의 유산이다. 그 돌멩이의 여정을 회상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할 수 있다. 인간 문명이 자연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말이 안 되는 그런 말보다 용서와 화해로 정신을 작품을 구현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등 박수근 작품, 자료 총망라

박수근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조각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박수근미술관 마당에 설치된 조각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시상식을 마치고 큐레이터 안내로 박수근 미술관 투어가 이어졌다.

박수근 기념전시관, 현대미술관, 파빌리오, 라키비움 등 분리된 미술공간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를 꽉 채워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볼 게 많았다.

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과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작품 중 41점을 관람할 수 있었다.

박수근 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박수근 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1950년대 후반과 1962년에 그린 '아기 업은 소녀와 아이들', '아기 없은 소녀' 등 한국 전쟁 이후 서민들의 초상과 일상, 풍경을 소박하게 담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박 화백이 생전에 작품의 참고자료로 수집한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15점을 포함해 옛 사진엽서 100여 점을 보면서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기념전시실에서는 박 화백의 가장 오래된 작품인 '철쭉'(1933), '겨울풍경'(1934)을 비롯해 아내 김복순을 모델로 한 '절구질하는 여인'(1952), '맷돌질하는 여인'(1950년대 전반) 등 초기 작품도 눈에 띤다.

박수근 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박수근 작품. (박평담 시민기자)

박수근파빌리온은 박 화백이 시도했던 탁본과 프로타주, 판화작품 외 한국현대판화협회 작가들이 기증한 소형 판화를 전시하고 있다.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천경자 등 박 화백의 동시대 작가 작품의 원화와 영상 아카이브도 감상할 수 있다. 

라키비움과 어린이미술관에서는 박 화백의 작품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와 도서 아카이브, 동화와 원화를 상설 전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미술관 개관 20년인 만큼 박 화백의 삶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테마로 다양한 기획이 펼쳐진다.

그의 유화, 드로잉, 판화, 탁본, 유품을 볼 수 있다. 한국조폐공사와 함께 박 화백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과 이건희 컬렉션 작품인 '한일'을 20주년 기념메달로 만들었다.

박수근미술관은 박 화백의 화풍에 등장하는 독보적이고 단순한 미감의 선을 건축기법에 적용한 고 이종호 건축가의 설계작으로 2003년 한국건축가협회상, 2006년 강원도 경관우수건축물 특별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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