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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식이 곧 예술'... 참여하고 공감해야 알 수 있는 작품들

[리뷰] '인식이 곧 예술'... 참여하고 공감해야 알 수 있는 작품들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3.02.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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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페터 바이벨 :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페터 바이벨 :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페터 바이벨 :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인지(認知)'. '어떠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안다'는 뜻이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 '이런 게 있구나'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인지,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인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페터 바이벨 :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은 사실 굉장히 어렵게 보이는 전시다. 전시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난해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시의 제목에 이 어려움을 풀 열쇠가 들어있다. 

예술을 '인지 행위'로 받아들인다면, 더 쉽게 말하면 눈 앞에 보이는 페터 바이벨의 작품 속에 들어가본다면 페터 바이벨이 전하는 작품의 의미가 바로 이해가 된다. 한 마디로 '보고, 느껴야하는 전시'. 직접 느끼고 인지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1944년생인 페터 바이벨은 예술과 과학 사이를 넘나들며 미디어아트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미디어 개념미술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의학과 수리논리학을 전공한 그는 행동주의 그룹 예술가들과 협업을 하면서 영상 작업을 시작했고 사진과 퍼포먼스, 비디오, 컴퓨터 설치 기반 작업 등으로 자신의 세계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는 작가다.

'다원성의 선율'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성의 선율'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서울관의 다원공간을 중심으로 구성이 됐다. 페터 바이벨의 60년대 초기 사진과 영상 작품으로 먼저 그와 인사를 나눈 뒤 공간을 나와 복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작가의 후기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작품들은 관객이 참여를 해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이 된다.

작품을 보는 우리가 작품의 소재다. 우리가 들어와야 작품이 비로소 완성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소개하는 <다원성의 선율>(1986-1988)은 산업혁명을 거쳐 데이터 기반의 포스트 산업 정보 혁명까지를 11개의 영상과 사운드로 구성해 시각화한 대형 영상 설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80년대 페터 바이벨을 비롯한 미술가들의 고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80년대는 그야말로 '급속한 변화'가 이루어졌던 때였다. 백남준을 위시한 비디오아트, MTV의 개국과 함께 활성화된 뮤직비디오 등이 등장하고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방편으로 '디자인'이 부각되면서 미술의 영역이 넓어지고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모습이 보여졌지만 급격한 변화는 '어디까지를 미술의 영역으로 봐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낳게 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구성이 잘 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무난하게(?) 인식될 수 있지만 80년대에 이 작품을 봤다면 분명 '미술의 영역'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들을 과연 미술로, 미술 작품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미술로 봐야할까? 그 때 당시의 생각을 가지고 본다면 색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페터 바이벨, 관찰을 관찰하기_불확실성, 1973, 폐쇄회로 비디오 설치. © 페터 바이벨 아카이브
페터 바이벨, 관찰을 관찰하기_불확실성, 1973, 폐쇄회로 비디오 설치. © 페터 바이벨 아카이브

복도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앞서 말한대로 관객이 참여를 해야 하나의 완성작을 볼 수 있다. <관찰을 관찰하기 : 불확실성>은 3개의 카메라와 모니터가 삼각 대형으로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삼각 대형 안으로 들어가면 앞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정면이나 얼굴 모습은 본인이 볼 수가 없다.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들은 다 볼 수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볼 수 없는 나의 얼굴. 그렇게 나는 다른 이들에게 '관찰'을 당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 채 살아간다.

베른트 린터만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YOU:R:CODE>는 일종의 거울이다. 관람객이 이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의 몸이 코드로 뒤덮여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세상은 우리를 어떤 인물로 보고 있는가? 서로 다른 거울을 통해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은 계속해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주체의 십자가형>은 또 어떤가? 십자가 가운데 작은 스크린이 있는 조형물. 관람객은 '십자가' 자세를 취해야 스크린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크린은 꺼진다.

'십자가에서만 자신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서구의 주체성,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을 통해야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 

베른트 린터만, 페터 바이벨, YOURCODE, 2017, 인터랙티브 컴퓨터 기반 설치, PC 4대 (리눅스, 사용자 지정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소프트 키넥트 심도 카메라 4대, 스크린 4대, LED 조명, 거울, 오디오 제너레이터,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장비. ZKM 컬렉션. ©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 센터 (ZKM) 사진 Felix
베른트 린터만, 페터 바이벨, YOURCODE, 2017, 인터랙티브 컴퓨터 기반 설치, PC 4대 (리눅스, 사용자 지정 소프트웨어), 마이크로소프트 키넥트 심도 카메라 4대, 스크린 4대, LED 조명, 거울, 오디오 제너레이터,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장비. ZKM 컬렉션. ©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 센터 (ZKM) 사진 Felix

작가는 우리에게 '인식의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전한다. 자신의 작품에 '상호활동적' 요소를 포함시켜 보다 적극적으로 관람객과의 소통과 참여를 제안한다. 그 제안에 관람객이 응하면 하나의 작품이 되고 하나의 예술 활동이 된다.

예술은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이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삶 속에서 인식하는 하나하나가 예술이라고 그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는 팔짱끼고 구경만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자신의 모습이 미술관 벽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며 볼 때 전시의 재미가 있다.

전시는 5월 1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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