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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칼럼] 이경훈과 백신

[이충환 칼럼] 이경훈과 백신

  • 기자명 이충환 에디터
  • 입력 2021.05.21 00:00
  • 수정 2021.12.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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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인천취재본부 에디터
이충환 인천취재본부 에디터

[뉴스더원=이충환 에디터] 시선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PGA투어 혼다 클래식 우승을 차지한 임성재나 올해 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김시우에 비하면 국내 팬들에게도 확실히 존재감이 떨어졌다. PGA투어에 뛰어든 지 3년만에야 취리히 클래식에서 공동 3위를 한 게 최고 성적이었다. 리더 보드에 평범한 한국식 영어 이름 ‘K. H. Lee’로 표기되는 선수. 기라성 같은 면면들 사이에 이름을 끼워 넣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랬던 그가 드디어 주인공이 됐다. 지난 17일 AT&T 바이런 넬슨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경훈이다. 비로소 PGA투어 공식 홈페이지의 한 면을 차지했다. 79전 80기 역전(逆轉) 스토리의 히어로로 떠올랐다. “PGA투어 출전 80번만의 우승을 지연시킨 폭우를 참아내”란 부제가 돋보였다. 생애 첫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던 중 악천후로 경기가 중단돼 2시간 30분이나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했던 상황을 담았다. 정상 도전의 외롭고 고된 여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낸 은유이기도 했다. 

늦은 시각 재방송으로 경기 장면을 지켜봤다. 그런데 TV 화면엔 그의 탁월한 경기력과는 또 다른 놀라움이 있었다. 홀마다 갤러리들이 쭉 늘어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스윙 한 동작 한 동작에 환호하는 모습부터가 놀라웠다. 더 놀라운 건 갤러리들이 하나 같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가족과 함께 경기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듯 했다. 솔직히 부러웠다. 

앞서 지난 13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와 관련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2주가 지났으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마스크 착용 권고를 내놓은 지 실로 13개월만이다.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은 “어느 정도 일상의 느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 순간을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CDC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자 면담 중이던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마스크를 벗으며 파안대소했다. 로즈 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대단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침 웨스트버지니아의 백신 접종센터를 방문하고 있던 질 바이던 여사는 CDC 발표를 듣고선 기자들과 일제히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 막 마스크를 벗어던지기 시작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두 정상은 우리 시각으로 22일 새벽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우리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백신 확보다. 문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백신을 얼마만큼 확보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부문 대미 투자 계획을 백신 수급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들 한다.  

이미 언론은 회담의 성공을 내다본다. 양국이 정상회담 결과물로 공동성명(joint statement)에다 공동설명서(joint fact sheet)를 추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공동성명에는 동맹관계와 대북 공조 등 전통적인 현안을 담고, 백신과 반도체에 관한 세부 공조방안은 공동설명서에 담는다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회담은 뚜껑도 열기 전 이미 성공이다. 방미길에 오른 문 대통령의 표정이 모처럼 밝은 것도, 저토록 지루한 대치양상을 이어가는 성주 사드기지에 우리 정부가 공사 자재와 군 관련 물자 반입을 재개한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백신 확보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진영이 있을 수 없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는 더더구나 있을 수 없다. 국민을 살리는 일이다. 갈 때 그랬던 것처럼 올 때 대통령의 얼굴이 환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경훈 본인이 말했듯이 이번 우승으로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많아지고,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을 그만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갤러리들의 모습에 더는 놀라지 않고, 그런 모습을 더는 부러워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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