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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아이가 죽고 부모는 남았다 '매스'

[이은선의 픽(pick)무비] 아이가 죽고 부모는 남았다 '매스'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05.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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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영화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디(브리다 울)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집사인 그는 곧 교회에 도착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테이블과 의자 위치까지 세심하게 고심하는 와중에도 주디는 어딘가 초조해 보인다. 누가 오기에 그런 것일까.

이유는 금세 밝혀진다. 교회에 도착한 이들은 총 네 명. 게일(마사 플림프턴)과 제이(제이슨 아이작스), 린다(앤 도드)와 리처드(리드 버니) 부부다. 이들에게는 6년 전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자녀를 잃었다는 공통의 슬픔이 있다.

하지만 그 온도와 무게는 같을 수 없다. 게일 부부의 아들 에번은 피해자이며, 린다 부부의 아들인 헤이든은 사망자인 동시에 사건의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떠나간 아이들은 말이 없지만 남은 부모들은 한자리에 모여 긴 대화를 나눈다.

이들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은 때로 서로를 찌르는 칼이다. 그리고 나아가 놀랍게도,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눈물이 되기도 한다.

111분간 이어지는 네 사람의 대화. 이것이 <매스>의 전부다. 사건 당시를 재연하거나 아이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플래시백은 배제되어 있다.

부모들을 둘러싼 방은 마치 연극 무대나 사각의 링처럼 보인다. 상대를 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쉽게 내려갈 수도 없는 공간. 날선 감정과 비난의 말들을 경계하며 서로를 탐색하듯 대화하던 네 사람의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허물어진다. 탄식과 울부짖음, 절망과 분노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피해자의 엄마인 게일은 이곳으로 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의 여정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다. 곁에서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있던 남편 제이는 사고 현장에서 목격해야 했던 참혹함을 떠올리며 결국 분노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낸다.

한편 가해자 부모인 린다와 리처드의 입장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를 길러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지만, 그들 역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마음껏 슬퍼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 지옥 같은 시간을 살아왔다.

영화를 목도하는 관객은 네 사람을 맞이하기 전 어찌할 바 모르던 주디의 입장과 같다. 감히 누가 어떻게 주인공들의 마음을 가늠할 것인가. 이들이 모인 방 어딘가에 앉거나 서지도 못한 채로 고통을 들여다보고 가로지르는 경험. <매스>는 공간과 연대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의 제의가 되기를 제언하는 영화다.

비극적인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매스>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아우르는 부모들의 시선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는 입장의 우회가 아니라, 사건 이후의 시간과 파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어쩌면 더 중요한 시선이기도 하다. 사회를 충격으로 물들이는 언론 보도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 크랜즈 감독은 2018년 2월 일어난 파크랜드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라디오로 접한 뒤 <매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딸이 태어난 직후였기에 비극은 그에게 단순히 먼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감독이 학창 시절이던 1999년 일어난 콜럼바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 역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그의 관심을 끈 건 유족과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만남이다. 이들이 한곳에 모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독에게 일종의 충격을 안긴 것이다.

다양한 관련 서적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관련 재판 네 편을 다룬 다큐멘터리 <낮을 향한 밤의 긴 여로>(2000)는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다. 피해자의 부모가 살인자의 부모를 만났던 사례들 역시 적지 않게 존재했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 중 하나는 게일이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과거”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망가져가는 결혼 생활은 또 하나의 상처다. 떠나간 아이들의 시간은 멈춰있지만, 부모에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인생의 시간들이 남아있다.

남은 이들에게 용서와 화해는 가능할 것인가. 나아가 모두에게 각자의 치유와 구원은 가능할 것인가. <매스>는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가능할 것인지 최선으로 탐구하고 싶었던 시도로 보인다.

용서와 구원은 애초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이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방식을 바꿔야 하는 노력이다. 이는 인간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인생이 계속해서 앞으로 흐르는 한,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용서와 구원보다 중요한 건 상처를 직시하고 고백하는 일이다. 그 용기로부터 삶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누구도 비극을 겪지 않는 사회라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사회적 차원의 공감과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매스>는 말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로 살아가는 한, 온전한 ‘남의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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