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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 무비] '헌트'가 1980년대의 시대공기를 불러온 이유

[이은선의 픽(pick) 무비] '헌트'가 1980년대의 시대공기를 불러온 이유

  • 기자명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입력 202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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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 <헌트>는 배우 출신 감독의 안전한 연출작일 것이라는 예상에서 보기 좋게 빗겨난다. 애초에 첩보 액션이라는 장르부터가 손쉬운 선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1980년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실제 사건들 몇 가지를 장르적 연출에 엮어낸다.

군부독재로 얼룩진 암울한 시대적 공기를 투사한다는 점에서는 <남영동 1985>(2012)와 <남산의 부장들>(2020),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있었다는 상상력에 기반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26년>(2012)을 떠오르게 하는 면도 있다. 

첫 장면은 <헌트>가 품은 영화적 야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국 워싱턴에서 교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독재자 전두환의 얼굴을 붙인 인형은 불타오르고, 시위대의 함성은 높아만 간다.

CIA 간부는 이 분노의 정체를 신군부가 무력으로 광주를 진압한 결과라 분석한다. 대통령을 안전하게 보좌해야 하는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각자의 방식대로 분주하다. 

‘80년 광주’를 정확하게 언급하면서 시작한 영화는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처럼 지체하지 않고 내달린다. 곧이어 관객의 눈과 귀가 당도하는 곳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총격 액션이다. 이는 테러 진압을 위해 목숨을 내던져가며 일하는 요원들의 일상적 풍경 묘사이자, 영화가 내건 장르적 성격을 분명하게 밝히는 장치다.

말하자면 <헌트>는 무력으로 찬탈한 정권이 유지되던 시대 배경 안에서 첩보물 구현의 가능성을 읽어낸 결과다. 총기 액션이라는, 한국 상업영화 신 안에서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이 어색함 없이 서사에 접붙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를 빈틈없이 고스란히 재연하는 영화는 아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장영자 사건, 아웅산 폭탄 테러, 북한 대위 이웅평의 귀순 사건 등의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인용되거나 약간의 변형을 거쳐 제시되는 사이사이에는 괄호로 남겨진 부분이 더 많다.

그 안을 채우는 것은 안기부 내 스파이인 ‘동림’ 색출 작전이라는 극화된 사건이다. 조직 내 알력 다툼이 치열한 해외팀과 국내팀은 상대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추적을 펼친다. 각자의 방식대로 예민하게 수사를 이어가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를 향한 의심을 키워간다. 동림은 과연 누구인가.  

간첩은 안기부 내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요긴한 장치다. 정보는 곧 권력이다. 필요하다면 무고한 이에게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것은 인물들에게 숨쉬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폭력으로 유지되는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덕적 딜레마는 명분 좋은 허울이다.

존 르 카레 스타일의 첩보물에 마이클 만의 총기 액션을 결합한 듯한 ‘올드스쿨’의 정석이라는 점, 이제는 사라진 독재 시대와 스파이라는 소재를 꺼내든 행보는 얼마간 다소 의외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출발점을 향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왜 지금, 80년대인가. <헌트>는 당대를 배경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 영화의 선택에서는 개인과 체제가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던 야만적 시대의 공기를 재연하고 싶었던 바람을 읽어낼 수 있다.

한국의 1980년대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과 과거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폭압적 욕망이 팽팽하게 대립했던 과도기다. 분열이 심화될수록 본질은 흐릿해진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믿었던 각자의 신념은 흔들린다. 그 사이 시스템은 필요가 사라진 개인을 가차없이 버린다.

영화의 후반부,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분진을 똑같이 뒤집어쓴 이들에게서는 이전까지 또렷하게 보였던 소속이 보이지 않는다. 누가 어느 편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유는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던 두 인물은 그제야 잠시 멈춰 서서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나의 신념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정체와 동력은 무엇인가. 너와 나는, 과연 다른가.

표면적으로 <헌트>는 실패의 서사다. 원하는 결말에 당도하지 못한 채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영화는 안기부 내 색출 작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이어지던 운동권 시위 등으로까지 시선의 층위를 넓힌다. 시대의 공기 전체를 담아내려는 의지는 보다 넓은 차원의 대의를 이야기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대 악의 시대가 저문 동시대에 이것은 그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일까. <헌트>는 아니라고 답한다. 독재 체제가 사라진 자리엔 더 복잡한 방식의 사회적 분열이 자리한다. 또렷한 적은 없지만 폭력은 교묘하게 심화되고, 특정한 이데올로기만큼이나 견고한 혐오의 작동 방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시대에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장르적 장치들을 걷어낸 자리에는 이 같은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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