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말의 품격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말의 품격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5.02 00:00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혀(舌)를 잘 놀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가 하면, 혀를 잘못 놀려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혀는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위험한 무기다.

말을 잘못해서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을 구설수(口舌數)라고 한다. 글은 잘못 쓰면 고치면 되지만, 말은 뱉고 나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말이 많다 보면 말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살다 보면 분별없이 뱉어낸 한마디 말로 인해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말을 아껴야 한다.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임종을 앞둔 그를 찾아온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齒)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뜻을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누워 임종에 들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말이 많은 것을 늘 경계해왔다. 말을 잘못해 화(禍)를 자초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여러 죄업이 많지만 입을 함부로 놀려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자의 형벌이 가장 가혹하다고 여긴다. 바로 다섯 번째 지옥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지키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의 형벌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집게로 혀를 뽑아내는 지옥인데 생전에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 모략, 남의 흉을 본 자, 욕을 많이 한 자, 거짓말을 많이 한 자 등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말을 하지 않고서야 살 수 없겠지만,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난세에 처세의 달인으로 살았던 재상 풍도(馮道)가 남긴 ‘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고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어 두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宇)’라는 「설시(舌詩)」의 구절을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하겠다.

명나라 때 육소형(陸紹珩)이 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오는 좋은 글들을 모아 수록한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혀는 남지만, 이(齒)는 없어진다. 강한 것은 끝내 부드러움을 이기지 못한다. 문짝은 썩어도 지도리는 좀먹는 법이 없다. 한쪽으로 치우친 고집이 어찌 원만하고 융통성 있음을 당하겠는가? (舌存常見齒亡 剛强終不勝柔弱 戶朽未聞樞蠹 偏執豈及乎圓融)”

강한 것은 남을 부술 수 있지만 결국은 제가 먼저 깨지고 만다. 부드러워야 오래간다. 강한 것을 더 강한 것으로 막으려 들면 더 강한 반동이 돌아온다. 드나드는 것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도 쉬 부서지고 썩는다.

그러나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썩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만 붙들고 고집을 부리기보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검수완박’ 소동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국회에서는 여전히 상대에 대한 막말과 비방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말은 자신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나는 그림자다. 그동안 갖은 막말로 구설에 올랐던 몇몇 정치인들은 그들이 내뱉은 말들이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사자들은 혀(舌)가 바로 발설지옥으로 가는 안내자였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말문을 닫고 살아갈 수는 없다. 진실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그 말은 침묵보다 나은 ‘금’이 된다.

공자는 『좌전(左傳』에서 ‘군자의 말은 진실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순자(荀子)도 ‘공손하면서도 엄숙한 태도로 성의 있게 말을 하고, 말을 보물처럼 진귀하게, 또 귀중하고 신묘하게 여기도록 하면 말을 듣는 게 기쁘지 않더라도 모두 귀중하게 여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말이 가지는 품격의 중요성을 유념하라는 가르침이다.

바야흐로 농익은 봄의 계절 5월이다. 싱그러운 봄날 아침에 창문을 열고 훈풍에 심호흡하며 콧속을 후비며 입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봄의 향기를 음미한다. 이리저리 혀(舌)를 굴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저작권자 © 뉴스더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