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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이 시대의 소조(蕭曹)를 그리워하며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이 시대의 소조(蕭曹)를 그리워하며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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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유방이 진을 무너뜨리고 항우(項羽)의 초(楚)와 천하를 다투었던 5년 동안의 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한신(韓信),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초삼걸(漢初三杰)이라 부른다.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함락시켰을 때 점령군의 장졸(將卒) 대부분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먼저 상부(相府)로 달려가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먼저 수습했다.

그리고 훗날 재상(宰相)이 되자 그때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와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그의 관심은 오랜 전쟁으로 피폐한 민심을 어떻게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소하가 죽자 그의 천거로 조참(曹參)이 승상에 올랐다. 그는 소하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소하가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면서 오랜 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한나라는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급속도로 안정되었고, 마침내 ‘문경지치(文景之治)’에 이어 무제(武帝)라는 걸출한 제왕을 탄생시킨다. 후세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이 고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고사성어로 회자되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전한(前漢) 말기 학자 양웅(楊雄)이 지은 『법어(法語)』 「연건(淵騫)」 편에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승전-검수완박”으로 점철된 문재인 정권 5년이 끝나가고 있다. 매번 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 정권의 허물을 캐서 폭로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5년 동안 국회를 장악한 그들은 전 정권에서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 대부분을 저들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부쉈다. 국회 의사당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망치 소리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결국 정치는 실종되고 민생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면서 그들이 호언장담했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형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다 보니 정치인들이 못된 요령을 터득했다는 점이다. 바로 다음 정권에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아예 못 바꾸도록 대못질하는 방법이다.

임기 말에 요직의 기관장을 새로 임명하는 것도 모자라 정권이 바뀌어도 법을 바꾸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바로 요즘 시끄러운 ‘검수완박’ 논쟁이다.

‘검수완박’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상당수 정치인은 공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걸까?

죄를 지었으면 책임을 지면 될 일이고, 죄가 없으면 조사를 받아도 떳떳할 것인데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무슨 큰 흑막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체 저들이 하는 짓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8주년이 지났다. 해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 계절은 국민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은 제도 미비와 부실했던 초동 대처 그리고 안전불감증 등이 남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그 진상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촛불 민심’에 편승하여 청와대에 무혈입성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그런 부실이 개선되지 않았고 비슷한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팽목항을 찾는 유가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다. 그토록 서슬이 퍼렇게 장담하던 진상규명 약속은 어디로 갔나?

사라진 기업들과 일자리, 천장을 모르고 오르는 물가 등, 먹고 사는 문제는 말도 꺼내기가 쑥스러울 정도이다. 시대는 21세기인데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7, 80년대의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했으니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저잣거리에서는 도무지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이 정부를 두고 ‘내로남불’이니 ‘먹통’이라고 조롱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정부를 믿었던 서민들은 요즈음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소하와 조참 같은 훌륭한 재상을 더더욱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밤을 걷어내고 아침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리는 내일이 있음을 안다. 혹시나 하고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여명 사이로 윤석열 정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지 어디 한 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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