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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무엇으로 이 근심을 풀 수 있으리오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무엇으로 이 근심을 풀 수 있으리오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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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한국승강기대학교 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한국승강기대학교 교수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몇 해 전 극장가에서 크게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赤壁大戰)>에 보면, 조조(曹操)가 휘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술을 마시며 시(詩) 한 수(首)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의 삶이 길어야 얼마나 되는가(人生幾何), 비유컨대 아침이슬처럼 덧없는 것이거늘(譬如朝露) …(중략)… 무엇으로 이 근심 풀 수 있으리오(何以解憂), 오로지 한 잔 술뿐이로다(唯有杜康). …(하략) 

후세 사람들이 「단가행(短歌行)」 또는 「대주당가(對酒當歌)」라고도 부르는 이 시는 감정이 충만하고 박자가 처량한 서정시다.

조조는 이 시를 통해 적벽대전 패배의 좌절감을 토로하면서 ‘우리의 삶이 길어야 얼마나 되는가(人生幾何)’라는 한탄을 시작으로, 짧은 인생에 대해 허무함을 아침이슬에 비유하여 그 덧없음을 노래했다.

거기에다 당시 나이 60세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아직도 천하를 평정하지 못한 아쉬움을 술 한 잔으로 털어내려 하고 있다.

‘조로(朝露)’는 아침이슬을 뜻한다. 아침이슬은 비록 수정처럼 영롱함을 자랑하지만 해가 뜨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한순간’ 또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할 때 이런 시적인 표현을 쓰곤 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서도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사라지는 버섯 ‘조균(朝菌)’에 비유했듯이 우리 인생살이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흔히들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 구름도 아침이슬과 더불어 역시 덧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하여 ‘부운조로(浮雲朝露)’라고 노래했다.

조조가 술잔을 높이 들고 인생을 일러 ‘아침이슬(朝露)’에 비유했듯이 우리들의 삶이란 결국 나뭇잎에 붙어 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새벽이슬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대선이 코앞에 닥치면서 상대를 향한 비방 수위는 그 도를 한참 넘어섰다.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곡예를 보는 국민은 가슴이 조여든다. 

이번에도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차갑고 냉정하다.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닌 데다가 비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보복과 한풀이의 삼류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잣거리에서 소주잔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던 지난 정권에 대한 비리 관련 수사를 이번에는 비껴갈 수 있을까?
 
며칠 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한국 대선을 “추문으로 얼룩진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혹평한 데 이어, 영국 유력지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도 한국의 여야 대선 후보와 가족들을 둘러싼 의혹을 꼬집으면서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역겨운(most distasteful) 선거”라고 보도했다.

선데이타임스는 “한국은 케이팝, 오스카상 수상, 드라마 ‘오징어 게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문화 수출국이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영화 ‘기생충’보다 더 생생하게 엘리트들의 추잡한 면모(seedy side)를 보여주는 쇼가 벌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중요한 국내외 현안에 관한 토론 대신 부패와 부정, 샤머니즘, 언론인에 대한 위협과 속임수가 선거를 집어삼키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무슨 창피한 일인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선거판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는 모습에 허탈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오죽 한심하게 보였으면 저렇게 비아냥거릴까? 요즈음 국민은 어차피 결론이 빤한 가소로운 정치판의 놀음을 보고 환멸을 느끼다 못해 분노와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대체 무엇으로 이 분노와 근심을 풀 수 있으리오? 잠시 취하면 잊을 수 있으려나.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순댓국을 시켜놓고 잔을 가득 채운다. 오로지 한 잔 술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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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웅 2022-02-21 08:06:1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적벽>이 나올 땐 중국이 하계 올림픽을 준비할 때였는데 지금은 동계올림픽을 진행했네요. 시간의 빠름과 중국의 양적 발전이 대단하네요. 다만 과거 천하통일의 야망이나 현재 금메달에 목숨 건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질적 성장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