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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 기자명 장원섭 원장
  • 입력 2022.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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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뉴스더원=장원섭 원장] 춘추시대 말기 노(魯)나라의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환멸을 느낀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이웃 제(齊)나라로 가고 있었다.

당시 노나라는 조정의 실세였던 계손자(季孫子)가 갖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는 바람에,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공자 일행이 태산을 넘어 막 제나라로 들어설 무렵, 엉성하게 만든 세 개의 무덤 앞에 엎드려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그 울음소리가 하도 슬퍼서 공자는 수레를 멈추고 자로(子路)에게 사연을 알아보게 했다. 자로가 여인에게 다가가 사연을 묻자 여인이 말했다.

“너무 무섭고 슬퍼서 울고 있습니다. 제 시아버님과 남편이 호랑이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이번에는 아들까지도 여기에 묻었습니다.”

대답을 마친 여인은 또 슬피 울었다. 자로가 돌아와 들은 것을 고하자,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여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사는 것이 어떻소?” 여인은 울음을 그치고 공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여기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나마 여기에는 무거운 세금이 없지요.”

공자가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느냐? 너희들도 꼭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백성에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苛政猛於虎)이니라.”

오늘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성어의 유래로서,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 편에 실려있다.

’가정(苛政)‘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한다. 예로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잘못 경영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세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세금을 올려 부족한 재정을 만회하려는 얄팍한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중한 세금 부과는 백성들을 가장 쉽게 착취하는 수단으로서,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害)는 백성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해독을 끼친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 정부 들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징벌적 과세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대상자가 졸지에 3배 가량이나 늘었다. 고지된 세액은 약 15배나 급증했고 그 바람에 세수(稅收)는 엄청나게 늘었다.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한 정부의 정책 실패가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세금 폭탄으로 돌아왔고, 집주인의 임대료 전가 등을 통해 ’월세 난민’을 양산함으로써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켰다. 연말정산이 끝나고 환급명세서를 받아든 근로자들은 참았던 분노를 터뜨린다.

어디 그뿐인가? 덩달아 장바구니 물가도 껑충 뛰었다. 대선이 끝나면 전기료도 대폭 오를 거라는 보도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라며 아예 손사래를 친다. 그동안 온갖 선심 정책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과 부동산 관련 세금 등 곳곳에 도사리는 세금 문제는 마치 전쟁터의 지뢰밭처럼 깔려 있다.

그동안 시장 전문가들이 나서서 정책의 허와 실을 진단하며 방향의 수정을 권고했지만,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던 정부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 국토부 장관은 “올해 집값이 많이 올라서 국민께 많이 송구한 심정”이라며 사과했다.

그동안 온갖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가 마지못해 실패를 인정한 것은 코앞에 닥친 대선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틈을 타고 여당 대선 후보는 재빨리 현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 자신과는 무관함을 선언했다. 미소를 띤 그 뻔뻔한 모습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저잣거리를 돌아보니 성난 민심에 두려움이라도 느꼈던 걸까? 이번에도 정부는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약 1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었다.

엄청나게 늘어난 세수를 가지고 선심을 쓴다고 해서 백성들이 그런 얄팍한 꼼수를 모를 거라고 보는가? 이제는 선거 후가 걱정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 저잣거리 골목마다 소주잔에 가득하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편이 더 낫다는 제나라 여인의 하소연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에 호랑이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귀여운 손자의 버릇을 고칠 때나 혼내는 일이 있을 때도,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단골 소재로 호랑이는 인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임인년 호랑이의 정기를 타고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범의 윤곽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이번에 내려오는 범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려나? 가혹한 세금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범이 아니라, 적어도 그 옛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자꾸만 졸라대던 그 이야기 속의 친근한 범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수(雨水)를 지나며 들판을 신나게 가로지르던 봄기운도 저잣거리 입구에서 멈춰 섰다. 많이 사나워진 민심을 다독일 해법을 고민하나 보다. 서늘한 한기는 여전히 등골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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