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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의 횡단여행] 차라리 돕지 말았어야 했나?

[전운성의 횡단여행] 차라리 돕지 말았어야 했나?

  • 기자명 전운성 횡단여행가
  • 입력 2022.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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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뉴스더원=전운성 횡단여행가] 몇 해 전 중국 티베트 국경에서 불과 3km 정도 떨어진 해발 8,163m의 고봉인 네팔 히말라야 마나슬루 계곡에 자리한 티베트인 프록마을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받았다.

이는 직접 연락을 받은 것이 아니라, 네팔 정부의 히말라야 지역 자연보존기구(NTNC)를 통해서였다.  

그 내용은 2015년 4월 진도 7.8이라는 강진이 이 마을이 위치한 고르카 주를 덮치면서, 이 마을에 우리가 세워준 새마을 에코로지가 붕괴된 사진과 복구 지원을 요청하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더욱 안스러운 것은 강진으로 산이 무너져 하산길이 막히고, 열악한 통신사정 등으로 지진발생 후 1년이 지난 뒤에 연락을 받았던 일이다.  

이런 연락에 망설임 없이 농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등에 기왕에 우리정부가 도와준 일이니 복구사업을 위한 긍정적인 검토를 요청한다.

사실 이 마을과의 인연은 강원대 UNEP eplc(생태평화리더쉽센터)의 초청연수로 온 NTNC의 마드푸 씨가 이 마을의  어려움을 호소한데서 시작된다. 이러한 지원요청에 현지 사전조사에 나선다.  

네팔 새마을 에코로지 준공을 축하하는 프록마을 주민들. (사진=전운성)
네팔 새마을 에코로지 준공을 축하하는 프록마을 주민들. (사진=전운성)

사실 몇 차례 왕복을 거듭했지만, 이 마을에 접근하기 위해 험준한 산길과 계곡 사이의 수많은 출렁다리를 건너야 하는 등 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가는 도중 산 구비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거대한 계곡의 외경스러움에 힘든 줄 몰랐다. 그리고 산을 오르기 위해 내려가야 하고 산을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평범한 사실도 배운다.

그리고 만년설이 쌓인 고봉사이의 계곡에서 산악유목민이 기르는 염소나 양 등의 가축들이 좁은 산길을 막는 교통정체에 야릇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자연의 신비스러움과는 달리 계곡 속 주민들의 만연된 절대빈곤에 애써 눈을 돌려야 했다.    

드디어 산악행군 4박 5일만에 주변에 칼날처럼 솟은 6-7,000m의 고봉에 둘러싸인  프록마을에 들어선다. 해발 2,500m에 납작 엎드린 듯한 넓지 않은 평지 위에 티베트 전통의 오색 앞치마를 두른 아낙네들 등 주민들이 맞아준다.  

이 마을에 며칠 묵으며 주변을 파악하고 마을 뒤 해발 약 4,000m의 빙하호인 칼탈호 등을 답사한다. 그리고 촌장 등 마을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칼탈호 이용과 마나슬루 등정가와 해발 약 5,200m의 라케고개를 넘어 안나푸르나 계곡 등으로 가는 많은 트랙커들이 쉬어가는 새마을 에코로지를 지어 마을소득을 높이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는다.  

귀국하여 마침 농식품부의 개발협력 사업에 응모한 결과 선정된다. 이에 그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건축을 위한 재료값 정도의 적은 예산이었지만, 애초 계획대로 우리의 농촌 새마을운동을 시작한다.  

부지는 마을사원에서 기부하고 필요한 건축자재는 당나귀 등에 실어 날랐다. 철근은 산행하기에 알맞게 겹겹이 구부려 당나귀 등에 실어 날라 다시 곧게 펴서 이용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거기에 심한 날씨 변화 등은 자재운반 등 공사에 영향을 준다. 특히, 근면과 자조 그리고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마을주민들의 헌신적인 힘든 노동력 제공은 다름 아닌 빈곤탈출을 위한 새마을운동이었다.  

이렇게 지어진 2층 구조의 1층에는 전통약방, 주방, 식당 겸 미팅 룸 등의 공동공간이 2층은 객실 4인용 객실 2개와 2인용 객실 3개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건물 준공식에 자매마을인 강원도 인제군 냇강마을 주민들이 참석하는 등 두 마을 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주민간의 왕래도 주선한다.

새마을 에코로지를 짓기 위해 일하는 프록마을 주민들. (사진=전운성)
새마을 에코로지를 짓기 위해 일하는 프록마을 주민들. (사진=전운성)

이는 대개의 ODA 개발협력 사업은 정해진 과업이 끝나면, 바로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멀어짐을 막기 위해 교류를 민간차원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실제로 냇강마을은 건물이 완성된 뒤에도 장학금지원이나 전화설치, 100여 마리의 염소 구입자금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자활을 도왔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몇 해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인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세계 8,000m 이상의 14개의 고봉을 최단시간 내에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김창호 등반대장으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프록마을을 방문하여 새마을에코로지를 잘 이용했다며, 촌장집 마당 한가운데 걸린 태극기와 프록마을과 냇강마을이 맺은 자매결연서 등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사연 등을 지닌 까닭인지 몰라도 대지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 복구지원을 간절히 바랬다. 이러한 나의 복구지원 요청에 농식품부 산하기관의 직원이 카투만두를 다녀와 복구설계 등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등 하더니 무슨 일인지 우야 무야되고 만다.

이 소식에 냇강마을 주민들과 나의 실망은 적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돕지나 않았다면, 상처는 없었을 텐데 하는 죄스런 마음을 지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복구지원을 위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에 일단 끝난 ODA 사업도 인재가 아닌 천재지변으로 붕괴되었다면 복구지원을 위한 AS시스템이 가동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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