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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의 횡단여행] 여행 길에 만난 책, ‘5개의 호치민 루트’의 비밀

[전운성의 횡단여행] 여행 길에 만난 책, ‘5개의 호치민 루트’의 비밀

  • 기자명 전운성 횡단여행가
  • 입력 2022.08.23 00:00
  • 수정 2022.08.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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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뉴스더원=전운성 횡단여행가] 연전 코로나가 대유행하기 직전 ‘천년의 사고를 가져 오자’라며, 인천국제여객터미널 항구를 떠나 인도차이나 반도 끝인 싱가포르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해로와 육로만을 이용하여 왕복하는 대략 13,000km 여행길을 떠났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 여정 가운데 현지의 지역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모았다. 그 가운데 미얀마 양곤의 백화점 서점에서 조잡하게 복사된 듯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베트남 경제사학자 당퐁이 쓴 <5개의 호치민 트레일> 등 영문판 두 권을 사 배낭에 넣었다.

여행 중에도 이 책을 틈틈이 읽으며, 그간 산발적으로 알던 베트남전쟁의 비밀을 캐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라오스 북부 루앙푸라방을 떠나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국제버스로 해발 1200m의 꾸불꾸불한 산악 길을 달려 고대 선사시대 유물인 돌항아리 고원평원인 라오스 북부 씨앙쿠앙 주 폰사반에 잠시 멈추었을 때의 일이다.  

이곳에서 마치 달표면의 분화구처럼 고원분지에 대형 웅덩이가 여기 저기 널려져 있는 것을 보며, 과거에 뭔가 큰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사실 예전에 이곳을 여러 번 방문하긴 했어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던 사실을 당퐁의 책은 일깨워주고 있었다.  

호치민 루트 위의 라오스 시엥쿠앙 주 돌항아리 평원에 미공군의 폭탄 투하로 생긴 분화구 모양. (사진=전운성)
호치민 루트 위의 라오스 시엥쿠앙 주 돌항아리 평원에 미공군의 폭탄 투하로 생긴 분화구 모양. (사진=전운성)

이들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1964-1973년 사이 미군 공습으로 파여진 구덩이들이었다.

당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엄청 많은 전쟁물자와 정규군을 미군 공습을 피해 길게 남북으로 뻗은 안남산맥을 따라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우회공격하는 이른바 호치민루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에 미군은 이들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공습을 가하고 있었다.  

이 때 투하된 폭탄 가운데 폭발하지 않은 막대한 양의 미폭발 포탄(UXO)을 분해하여 집 기둥과 가재도구나 가축의 먹이통으로 이용하던 마을을 보았다. 폭탄은 세월이 흘러 녹슬었지만, 마을은 살아 있는 전쟁박물관이었다.

문제는 이들 UXO가 농민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경작지를 이용하거나 확장하는 데 큰 방해가 되어, 라오정부는 전국에 걸쳐 UXO의 제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라오스 호치민루트가 통과하는 마을에 불발 네이팜탄을 분해해 세운 집 기둥들. (사진=전운성)
라오스 호치민루트가 통과하는 마을에 불발 네이팜탄을 분해해 세운 집 기둥들. (사진=전운성)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호치민 루트하면 북베트남에서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쳐 남베트남과 연계하는 안남산맥 속의 1100km에 이르는 인적물적 수송을 담당하는 루트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루트 외에 네 개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네 개의 호치민 루트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즉, 두 번째 호치민루트는 군용 연료공급을 위하여 중국국경에서 산과 강을 건너  남베트남의 베트콩 게릴라본부까지 건설한 약 5,000km의 믿기 어려운 비밀 호치민 석유 파이프라인 루트였다.

세 번째 루트는 강력한 미 해군함과 남베트남 해군을 속이기 위하여 위장한 어선이나 상선을 이용하여 북쪽에서 남쪽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보내는 해상 호치민루트였다.

네 번째 루트는 군고위 간부들과 남베트남의 기간요원들의 교육 등 북베트남을 왕래하는 항공 호치민루트였다. 이 루트는 기계류나 의약품을 공급하고 부상자나 군가족을 위하여 프놈펜, 홍콩, 중국 광주 그리고 하노이 사이를 잇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루트는 신비스럽고 보이지 않는 자금루트였다. 이는 남베트남에서 활동하는 베트콩을 돕기 위하여 세계 각지로부터 남베트남으로 자금을 보내기 위하여 서방 은행을 이용하는 루트였기 때문이다.

이는 파리, 런던, 홍콩, 방콕, 모스크바, 베이징으로 부터의 전화나 코드로 사이공의 베트콩 혁명전선에 보내는 루트였다. 이는 누구도 몰랐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체포된 사람은 없었다.  

라오스 호치민루트가 통과하는 마을에 불발 네이팜탄을 분해해 세운 창고 기둥들. (사진=전운성)
라오스 호치민루트가 통과하는 마을에 불발 네이팜탄을 분해해 세운 창고 기둥들. (사진=전운성)

여행 중 이 책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안남산맥을 통한 호치민 루트는 교묘하게 숨겨진 네 개의 호치민 루트를 보호하기 위한 미군에게 던져진 미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군으로부터 많은 공습을 받은 호치민루트였지만, 결국은 이 루트 때문에 북베트남군은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하노이 당국 스스로 호치민트레일 박물관을 건립하여 홍보하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할 수 일이다.  

이처럼 호치민루트는 이기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아픔과 미래의 희망을 지닌 역사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현장을 지나는 현대자동차 중고버스를 개조한 2층 침대버스는 일어나 앉으면 목에 닿을 정도로 낮아, 모두 스키보드 선수처럼 누워가야 할 정도로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덩치 큰 유럽인은 침대에 눕기를 아예 포기하고, 복도에 누워버렸다. 만일 이러한  산악지대에서 사고라도 나면 대형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운전수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이것이 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개도국의 인권이구나 하며, 스스로 택한 길이였기에 아무 탈 없이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직도 남북대치 상태에 있는 우리는 북한이 파고들어 온 땅굴 외에 5개의 호치민루트 이상의 더 많은 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전쟁에 이기려면 적에게 속지 않고, 적을 속이면 된다는 속설이 괜한 말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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