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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의 횡단여행] 변화를 이끈 인도차이나반도 남행

[전운성의 횡단여행] 변화를 이끈 인도차이나반도 남행

  • 기자명 전운성 횡단여행가
  • 입력 2022.09.06 00:00
  • 수정 2022.10.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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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뉴스더원=전운성 횡단여행가]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직전 인천국제항에서 2만6000 톤급의 카페리를 타고 중국 천진항에 도착하였다.

이는 항공기가 아닌 해로와 육로만을 이용하여 싱가포르까지 왕복 여행하는 인도차이나반도 남행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실크로드 탐방을 위해 배를 탔을 때의 많은 승객들로 붐비고 있을 때와는 너무 달랐다. 이러한 대형 선박에 선원 숫자보다 훨씬 적은 고작 14명의 승객만이 탔을 뿐이었다.                              

이는 북한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을 공중에서 파괴하는 사드 배치에 중국의 보복적인 관광정책의 결과였다. 그런데 중국은 관광에만 그치지 않고, 무역과 문화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우리를 압박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인천-천진 간을 운행하는 천인호의 상갑판. (사진=전운성)
인천-천진 간을 운행하는 천인호의 상갑판. (사진=전운성)

아무튼 인구 900만이 넘는 천진에 내려 버스와 기차 등 육로를 이용하여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즉, 싱가포르까지 내려가, 거기서 다시 뒤로 돌아 북상하면서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말레이시아,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을 거쳤다. 

그리고 기차로 중국으로 재입국하여 청도에서 배편으로 인천항으로 귀항하는 대략 1만3000km, 릿수로는 3만 2천리가 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다만, 미얀마의 경우 정치적인 불안과 반군과의 분쟁으로 국경 육로통과가 거부되어 공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컸다. 

이러한 나의 남행(南行)을 누구는 북한의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한 탈북자들의 남하(南下)루트라고 했다. 실제로 중국남부 국경 인근에서 엄격한 검문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이는 일본군이 제2차 대전 당시 중국의 해안지역을 점령한 후 싱가포르를 향해 진격하던 남침(南侵)코스라 했다. 

라오스에서 보는 베트남 북부 국경검문소에서 월경을 기다리는 버스 승객들. (사진=전운성)
라오스에서 보는 베트남 북부 국경검문소에서 월경을 기다리는 버스 승객들. (사진=전운성)

한편, 모택동 주석의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기 위한 등소평 주석의 두 차례에 걸친 남순(南巡)루트를 닮았다고도 했다. 또한 그 옛날 신라 고승 혜초가 중국의 장안을 출발하여 광주와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로 가는 구도(求道)를 위한 남향(南向) 길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1958년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하노이 방문에 이어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노딜로 끝난 북미회담을 위해 1차는 싱가포르에 비행기로 2차는  기차로 평양과 하노이 간 4,023km를 왕복하며 뭔가를 꿈꾸던 남몽(南夢)의 길이었다. 

이런 여러 모습을 보며, 등소평과 북한지도자들의 행보에 주목하였다. 거의 반세기 전인 1978년 등소평이 싱가포르를 방문하면서 이광요 수상에게 위대한 일을 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한다. 이는 기적같은 경제성장을 이룬 싱가포르에 대한 찬사였다.

북미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찾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리조트. (사진=전운성)
북미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찾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리조트. (사진=전운성)

그 이후 중국의 인민일보는 싱가포르를 더 이상 미국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멈춘다. 사실 오늘날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개발경제에 관심이 많은 정치가나 연구자들이 가보고 싶은 롤모델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류 국가 도시로 북경이나 상해에 비해 형편없을 것으로 생각하던 방콕과 쿠알라룸푸르 등의 더 나은 발전상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에 74세로 평생 공산주의자였던 등소평이 대장정의 동료들을 설득하여 중국을 시장경제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 2018년 6월 북미정상 1차 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김정은은 그 유명한 마라나 베이 샌스의 최고층 스카이 파크에 올라 싱가포르의 발전된 사회경제 실상을 이해하고,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개혁을  이끌었던 남행의 후속적인 조치 대신 오히려 개방을 더 조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러한 여행을 통해 중국을 포함하는 인도차이나 반도 내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전환을 통한 경제발전을 꾀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개방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아직도 식량부족에 허덕이는 북한정권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개혁개방에 자신이 없어 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건지,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는지 몰라도, 이는 민생보다 체제와 정권유지에 최우선에 두고 있음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장막을 걷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통 큰 정책을 기대해 보고 싶다.  

북미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찾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리조트 야경. (사진=전운성)
북미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찾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복합리조트 야경. (사진=전운성)

현재 인도차이나반도의 각국이 지닌 정치·경제체제 그리고 종교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국경선을 넘나들며 상호발전을 꾀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특히, 여행 도중 일부 국가에서의 정치종교적인 언행에 유의해야 하나, 그 외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이동의 자유 등등 다양한 자유로운 활동은 사회발전의 활력소가 되고 있음이다. 

그리고 남행 도중 하노이에서 만난 지인인 모스크바대학 출신 베트남 과학기술아카데미의 쾅 박사가 중월전쟁을 상기시키면서, "만일 한국이 중국의 사드압박 등에서 물러선다면 천년을 뒤로 가는 것과 같다"고 한 말이 내내 귀전을 세게 울리고 있다.

이제 귀국길에 오르며, 배의 갑판에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와 뱃전에 부딪치는 높은 파도소리는 다름 아닌 남행에서 본 개방의 효과를 실행으로 옮기기를 마다하는 북한의 지도자들의 진정한 생각을 묻는 굉음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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