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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의 세상이야기] 누가 배신자냐?

[변평섭의 세상이야기] 누가 배신자냐?

  • 기자명 변평섭
  • 입력 2022.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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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논설고문, 前 세종시정무부시장
변평섭 논설고문, 前 세종시정무부시장

[뉴스더원=변평섭 논설고문] 1455년 6월 1일, 수양대군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퇴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지 2년째 되던 해 명나라 사신을 맞아 성대한 연회를 베풀 계획이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성삼문, 하위지, 유응부 등 집현전 학자 출신 인물들이 세조를 몰아내는 극비작전을 세웠다.

마침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이 연회 때 운검(雲劍)이라 하여 칼을 차고 임금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거사를 도모할 수 있었다. 지금의 대통령 경호실장과 같은 역할이 운검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조가 연회 장소를 변경하면서 운검도 세우지 말라고 지시가 떨어졌다. 세조가 이와 같은 조치를 내린 것에 불안을 느낀 김질이 자기 장인 되는 정창손에게 모의 계획을 폭로했고, 정창손은 그 길로 세조에게 일러바쳤다.

이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자행되었는데 성삼문 등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들 가족 중 여자들 172명이 노비로 끌려갔다.

김질은 동지들을 배반한 공로로 승승장구 벼슬길을 달려 좌의정에까지 올랐고, 그의 장인 정창손도 영의정을 지내는 등 영화를 누렸다. 

이뿐이 아니다. 조선왕조 500년은 이처럼 배신과 그에 대한 보복으로 얼룩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배신을 한 쪽에서는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史實)을 왜곡하거나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런 배신을 정의를 위해서라거나 국가를 위한 소신으로 분장을 한다.

이런 배신의 역사 때문일까, 의리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가 색다른 화제가 되기도 한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지내는 등 권력을 누렸던 장세동이 12·12 군사반란죄로 3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12·12 사태’라고도 하는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 대통령이 국군 보안 사령관 때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로 빚어진 권력 공백기를 이용하여 일으킨 쿠데타.

장세동은 이 재판에서 다른 가담자들처럼 발뺌을 하거나 전두환에게 뒤집어씌우려 한 것과는 달리 전두환을 옹호하고 당당히 형을 받았다.

그리고는 1997년 12월 형을 마치고 교도소 문을 나서자 그 길로 전두환의 집으로 가서는 ‘각하, 휴가 다녀왔습니다’하고 신고를 해서 언론에 화제가 됐었다.

그렇게 그는 주군의 죄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의리를 지켰는데 지난해 11월 전두환이 사망하자 하루도 빠짐없이 빈소를 지키는 열성도 보였다.

그는 민주화운동 탄압과 인권 문제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주군에 대한 의리만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의리의 사나이 장세동’이라거나 ‘돌쇠 장세동’.

이와 반대로 배신의 낙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인도 있다. 유승민 전 국회의원이 그런 케이스.

그는 2015년 6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무회의에서 심판받아야 할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히면서 지금까지 그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경제정책에 대한 해박한 소신과 경륜에도 불구하고 ‘배신’이라는 너울은 그렇게 치명적인 것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당 대표가 ‘내부 총질’이라는 배신의 너울에 징계를 당하고 윤핵관과의 갈등 등으로 당이 혼란을 겪었던 것도 역시 ‘배신’이라는 단추가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이고, 당은 이준석 전 대표가 배신했다는 주장이 아닌가.

요즘 정국을 뜨겁게 달구는 ‘대장동 게이트’의 중심인물 유동규 전 성남시 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잇단 폭로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복심으로 구속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은 유동규 전 본부장이 배신했다고 할 것이고 유 본부장은 그들이 나를 배신했다며 폭로하고 있으니까….

특히 유동규 전 본부장이 “세상에 의리는 없더라”라며 이재명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는가 하면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다’라고 한 말은 살기마저 느끼게 한다.

영웅 중의 영웅이라는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시저)가 자식처럼 믿고 사랑하던 브루투스에 배반을 당해 칼을 맞고 원로원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브루투스― 너마저…’하고 숨을 거두었듯, 이재명 대표의 측근들은 ‘유동규― 너마저…’하며 탄식할는지 모른다. 참으로 정치가 무섭고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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