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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천수만 철새 이야기⑭ 철새들의 파라다이스 천수만

[기획] 천수만 철새 이야기⑭ 철새들의 파라다이스 천수만

  • 기자명 박두웅 기자
  • 입력 2022.12.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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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천수만 코구멍 다리에서 노닐고 있는 고니들 (사진=박두웅 기자)
속칭 천수만 코구멍 다리에서 노닐고 있는 고니들 (사진=박두웅 기자)

[뉴스더원 충남=박두웅 기자] 파라다이스.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낙원을 말한다. 

천수만에 앉아 고니와 황새들이 느긋하게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낙원을 생각해 봤다. 

옛 사람들은 낙원을 ‘무릉도원’이라 불렀다. 중국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연명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노래했다. 그곳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고 하나같이 친절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천수만 수로에서 한가롭게 먹이사냥을 하고 있는 황새들 (사진=박두웅 기자)
천수만 수로에서 한가롭게 먹이사냥을 하고 있는 황새들 (사진=박두웅 기자)

서산 지곡 출신 현동자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그 ‘무릉도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글짓기와 그림을 좋아하기로 유명하였던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낙원의 모습이다. 1447년 음력 4월 20일 꿈이다.  

​그로부터 69년 후인 1516년,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utopia)'라는 책에서 이상향을 묘사했다. 그는 하루 6시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물건을 창고에서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으며 관용 평등 자유가 구현된 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 꽤나 사회적이다. 

수로를 따라 비행하는 노랑부리저어새 가족들 (사진=박두웅 기자)
수로를 따라 비행하는 노랑부리저어새 가족들 (사진=박두웅 기자)

어쩌면 ‘낙원’은 꿈에서나 가능한 곳이기에 더 감미로운지 모른다. 

그런데 스페인에 현대판 낙원으로 알려진 곳이 있다고 한다. 스페인 안다루시아 지방에 있는 마리넬리다 자치시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이 기업 공동체라면 스페인 남부 안다루시아의 마리넬리다는 직접 민주주의, 협동조합, 실업률 제로, 무상 주거, 무상 의료 등을 특징으로 하는 마을공동체다. 

인구 2700명인 마리넬리다 시의 모든 정치는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의회에 누구나 참여하고 발언하는 직접 민주주의로 이루어진다. 협동조합은 몬드라곤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주택은 상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누구나 집을 가지며 집을 개조해 가게를 내거나 상속할 수 있지만, 집과 토지 자체의 매매는 불가능하다. 

주민 누구나 월 15유로(2만원)만 내면 주택에서 평생 거주가 가능하고, 생산협동조합이 있어 언제든지 취업이 가능하다. 집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라는 마리넬리다 시의 원칙이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빵과 자유와 문화가 주어진다. 공원에는 테니스코트, 야외 체육관과 수영장, 석조 원형 극장 등이 있어서 스포츠와 영화 연극 감상의 기회가 거의 공짜로 주어진다. 개인 소유의 술집과 카페가 영업을 하는데 투기 목적의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또 마리넬리다에는 경찰이 없다. 도로 청소를 비롯한 각종 공공장소의 주요 업무는 매월 한 번 있는 ‘빨간 일요일’에 자원봉사 그룹이 모여서 처리한다. ‘내 집을 내가 짓는다’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도 우리가 함께 모여 짓는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친 마리넬리다 사람들은 주민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집을 지어준다. 

집 걱정, 실업 걱정, 빚 걱정이 없는 '3무 마을'로 불리며 '유토피아 공동체'로 명성을 얻어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라는 책도 나왔다. 

수로에 노니는 물고기떼를 지켜보는 가마우지 (사진=박두웅 기자)
수로에 노니는 물고기떼를 지켜보는 가마우지 (사진=박두웅 기자)

그러나 마리넬리다의 오늘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30년 전만 하여도 그곳은 극심한 빈곤으로 허덕였다. 살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법을 어기기도 하면서 국가의 폭력에 맞서서 나름의 아나키 유토피아를 실현했다.

일부에서는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로 불리는 마리넬리다가 스페인 중앙정부와 안달루시아 지방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포퓰리즘 정책에 의해 지상낙원으로 과대포장됐다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 일자리 걱정이 없는 마리넬리다 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ou(없다)'와 'topos(장소)'를 합친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무릉도원 역시 다시 찾아가려다 실패하고 마는 것으로 그려진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도 꿈 이야기다. 

동네 개가 먹이를 빼앗아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순둥순둥 독수리들 (사진=박두웅 기자)
동네 개가 먹이를 빼앗아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순둥순둥 독수리들 (사진=박두웅 기자)

그렇다면 유토피아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너무 안이했던 것은 아닐까. 정치적인 갈등과 이념적인 갈등, 계급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작게나마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꾸릴 수 있을까. 

살면 살수록 그런 순진한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비슷한 이념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더 심하게 싸우고 더 심각한 갈등에 빠지는 세상이다. 더 심하게 실망하고, 서로에게 더 깊고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사냥감을 기다리는 말똥가리 (사진=박두웅 기자)
사냥감을 기다리는 말똥가리 (사진=박두웅 기자)

어쩌면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힘겨운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이들의 걸어가는 시간과 공간들, 어떤 나쁜 일 앞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더 나아질 것이라며 서로의 등을 다독여 주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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