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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의 횡단여행] 눈 덮힌 그랜드 캐니언에서 맞는 제야와 새해 아침의 함성

[전운성의 횡단여행] 눈 덮힌 그랜드 캐니언에서 맞는 제야와 새해 아침의 함성

  • 기자명 전운성
  • 입력 2022.12.27 11:59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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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운성 횡단여행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명예교수

[뉴스더원=전운성 횡단여행가] 동서고금과 남녀노소 불문하고 적지 않은 이들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제야와 새해  첫 햇살을 맞고자 바닷가나 산봉우리를 찾아 왔다. 아니면 나름의 의미를 지닌 곳에서 꿈과 희망을 기원한다.    

나 자신도 이맘때면 나름의 장소를 택하여 새로운 결의를 다지곤 했다. 그중에서도 눈 쌓인 미국 아리조나 주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맞는 제야와 새해아침을 맞던 추억은 그립다.    

미 대륙을 왕복횡단하기 위해 살던 대서양에 면한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을 자동차로 떠나 뉴욕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 플로리다 주 끝인 키웨스트에 닿았다.

거기에서 멕시코만을 따라 알라바마, 미시시피, 루이지아나 주 등의 여러 곳을 방문하고, 삼엄한 방책을 설치한 미국-멕시코 국경도시인 텍사스 주 라레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남쪽으로 1200km 떨어진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그랜드캐니언 설경. (사진=전운성)
그랜드캐니언 설경. (사진=전운성)

12월의 황량한 멕시코 중앙고원을 남진하여 드디어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고대 멕시코 문명을 엿보고 다시 북상을 시작하여 미·멕국경을 넘어 미국 노갈레스로 재입국한다.

메마른 소노란 사막을 덮고 있는 거대한 다육식물 선인장 밭을 만난다. 당장이라도 방울뱀이나 황야의 건맨들이 나타날 것 같은 사막 분위기였다.  

여정은 계속되었다. 록키산맥을 넘어 태평양안의 샌디에고, LA와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명소를 둘러보고 겨울 눈 속의 장엄한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지난다.

이어 연간 4000만 명이나 찾는 모하비 사막 속에 현란한 대형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라스베이거스에도 멈춘다. 그리고 콜로라도 강을 막아 세운 후버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서서, 이 댐이 지닌 상당한 경제사적 의미를 생각하며 감회에 젖는다.

깊은 대협곡을 가득 채운 안개. (사진=전운성)
깊은 대협곡을 가득 채운 안개. (사진=전운성)

여기서부터 갑자기 날씨가 변하더니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는 길은 차창 와이퍼의 동작이 버거울 정도로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속의 미아가 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이러한 악천후로 되돌아가는 차량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눈 속을 뚫고 나아갔다.  

그런데 다행히도 눈발이 점점 약하게 내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 그랜드 캐니언의  남쪽 가장자리인 사우스림에 자리잡은 매표소에 도착했다. 매표소 직원이 일러준 그랜드 캐니언의 절벽에서 아주 가까운 2층으로 된 로지에 여장을 풀었다. 이미 많은 투숙객들이 떠드는 소리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로비로 나오니, 이미 남녀노소 투숙객 거의가 나와 와인 잔을 들고 새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자정을 알리는 10초 전부터 카운트다운 합창이 시작되었다. 10, 9, 8,,, 3, 2, 1, 0 소리와 함께 'Happy New Year'를 외치며 서로 새해 첫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행운을 비는 정경은 포근함 그 자체였다.  

그랜드 캐니언 마더 포인트에서 새해를 맞는 관광객. (사진=전운성)
그랜드 캐니언 마더 포인트에서 새해를 맞는 관광객. (사진=전운성)

이렇게 눈 속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새해 아침을 맞았다. 대략 길이 446km의 그랜드 캐니언은 폭은 가장 좁은 곳은 180m, 넓은 곳은 30km에 이르며, 계곡의 깊이는 1600m까지 이르고 있다.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을 보이는데 약 20억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하니, 인간의 역사적 숫자만으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대협곡 가장자리에 마련된 전망대인 마더 포인트와 야바파이 포인트에는 절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1000m 이상의 깊은 협곡을 메운 운해 모습에 전율마저 느껴질 정도의 비명 아닌 탄성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갑자기 합창이나 하듯 와우! 하는 함성과 함께, 두텁게 깔렸던 안개 한가운데 뚫린 열린 공간은 서서히 이동하며 마치 서치라이트 비추듯 조금씩 보여주는 대협곡의 비경에 빨려 들어갔다.

안개 속을 뚫은 아침햇살과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바뀌는 황토색의 협곡은 신비로움과 동시에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바람으로 구름이 한꺼번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보여주는 절경은 마치 거대한 무대 위의 춤을 보는 듯한 재미를 돋구고 있었다. 전망대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안개가 대협곡의 경치를 가려줄 때의 아쉬운 소리와 보여줄 때의 환호 소리가 교차하고 있었다.    

짙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그랜드캐니언. (사진=전운성)
짙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그랜드캐니언. (사진=전운성)

누구나 탄복하듯이 1903년 루스벨트 대통령도 이곳을 찾아 뛰어난 경치에 감격하여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계기를 만든다. 인근 브라이스 캐니언으로 이동하면서 만난 먹이를 찾아 도로까지 나온 늑대가족과 방금 전에 숲을 거닐던 사슴가족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먼 미 대륙을 건너 대서양 안의 뉴헤이븐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장정에서 만난 다양한 기후와 지형 그리고 인간이 만든 고대와 현대문명 사이의 긴 여정을 뒤돌아보며, 계묘년 아침 강호제현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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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남 2022-12-27 13:58:51
merry x-mas & happy new year!
우흥명 2022-12-27 13:07:19
그랜드캐년을 잊고있었는데 이글을 읽고 옛추억이 떠올랐네요~
역사기록과 자료를 보니 마냥 보기만 했던 여행이 추억과 함께 정리되는거 같아 넘 좋았어요~
자주 이런글 올려주세요~~